친구랑 약속을 잡으면 취소는 늘 같은 쪽이 하더라.
한 명은 늘 취소하고 한 명은 늘 취소당하고. 그게 몇 달 가면 관계가 좀 이상해진다니까.
나도 취소당하는 쪽이었던 적이 있어.
세 번쯤 연달아 취소당하니까 좀 서운하더라. 나를 별로 안 좋아하나 싶고. 그래서 다음부터는 내가 먼저 안 잡았어.
근데 취소 메시지를 다시 보다가 뭘 하나 봤어.
그 애는 취소 얘기를 바로 안 꺼내. 늘 안부부터 한 줄 보내. 밥 먹었냐, 오늘 뭐 하냐, 이런 거 먼저 보내고 한참 있다가 취소 얘기를 하더라.
세 번 다 순서가 똑같았어. 그러니까 그거 그냥 보낸 게 아니라 한참 망설이다 보낸 거잖아.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 애는 그때 상황이 안 좋았어.
나갈 돈이 없었던 거야. 근데 그 말을 못 하겠으니까 다른 핑계를 대고 취소한 거고. 취소할 때마다 자기가 더 힘들었던 거지.
칼손 그럴 땐 그냥 말하면 되잖아.
불나방 그걸 어떻게 말하냐.
돌부처 나는 말해.
돌부처는 말한다니까. 근데 돌부처니까 말하는 거지 아무나 그렇게 못 해.
그 뒤로 나는 약속을 잡을 때 돈 안 드는 걸 하나 섞어.
밥 먹자 대신 좀 걷자고 하거나, 동아리방에서 보자고 하거나. 그러면 취소가 확 줄더라.
취소하는 쪽이 나를 덜 좋아하는 게 아니었어. 그 약속이 그 애한테 너무 비쌌던 거지. 값을 낮춰주니까 그 애가 안 도망가더라.
그리고 취소당하면 내가 한 번 더 잡아.
두 번 취소당했다고 안 잡으면 그 애는 자기가 잘렸다고 생각하거든. 진짜로 힘든 애가 그때 완전히 없어진다니까.
나는 종목도 모르고 남의 사정도 모르는 애다. 물어볼 것도 아니고.
근데 취소 메시지 앞에 안부 한 줄이 붙어 있으면 그건 미안하다는 뜻이더라. 그 한 줄만 봐도 알겠잖아.
돈은 몰라도 마음은 같이 봐줄 수 있다니까. 요새 계속 취소하는 친구가 있으면 값싼 걸로 한 번 더 잡아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