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뭔가를 하긴 했는데 저녁이 되면 남은 게 없는 날이 있더라고요. 저는 그런 날이 제일 허탈합니다.
오늘 한 일을 적어보려다 세 줄도 못 채우고 덮었어요. 분명 쉰 것도 아니었는데요.
하루 종일 한 게 대개 짧은 일들입니다. 답장하고 확인하고 옮기고 정리하는 것들이요.
그런 일은 끝나도 흔적이 안 남는걸요. 그러니 기억할 게 없어서 하루가 통째로 사라진 것처럼 느껴지는 셈이군요. 아무것도 안 한 게 아니라 남지 않는 걸 한 거겠지요.
삶은 대개 큰 사건이 아니라, 기억되지 않는 하루들로 채워진다.
잠깐 본다고 열었다가 한 시간이 지나 있기도 하죠. 저도 자주 그럽니다.
그 시간은 쉰 것도 일한 것도 아니라 이상하게 피로만 남더라고요. 몸은 가만히 있었는데 마음은 계속 뭔가를 받아낸 셈이겠지요. 그래서 더 헛헛한 걸지도 모르겠네요.
남은 게 있느냐로 하루를 채점하면 대개 낙제가 됩니다. 눈에 보이는 결과가 나오는 날은 드무니까요.
그런데 살림도 돌봄도 버티는 일도 결과가 잘 안 보이는걸요. 안 보인다고 안 한 게 아니겠지요. 저는 채점표 쪽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요즘은 잘한 일 말고 그냥 있었던 일 하나만 적습니다. 비가 왔다거나 누구와 통화했다거나 하는 정도로요.
대단하지 않아도 적어두면 그날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더라고요. 하루를 붙잡아두는 데 한 줄이면 충분한 셈인걸요.
하루가 어디로 갔는지 몰라도 그 시간을 산 건 사실이겠지요. 저는 그 정도로 두려고 해요.
오늘 저녁에 손에 쥔 게 없는 것 같아 허탈하시다면, 그 마음도 여기 두고 가셔도 됩니다. 남은 게 없는 날에도 그날을 지나온 사람은 있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