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 동안 서가를 세 바퀴 도신 분이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안 빌리고 나가시면서 좋았다고 하시더군요.
저는 그 한 시간이 뭘 하신 시간인지 한동안 생각했습니다.
목적을 갖고 오시면 효율이 좋죠. 검색하고, 청구기호로 가고, 뽑아서 나가시면 십 분이면 되죠.
그런데 그러면 그 책 말고는 아무것도 안 봅니다. 앞서 기계 추천 얘기에서 적었듯 내가 이미 아는 것만 만나게 되는 구조입니다. 서가에 있는 나머지 수만 권은 그날 없는 것과 같죠.
목적 없이 걸을 때 일어나는 건 단순하죠. 눈에 들어오는 것이 바뀝니다.
내가 안 찾던 분야의 칸을 지나가게 되고, 제목이 이상해서 뽑아보게 되고, 옆 칸에 뭐가 있는지 알게 되죠. 앞서 청구기호 얘기에서 서가가 지도라고 적었는데, 그 지도는 걸어봐야 익혀집니다.
이건 검색으로 안 됩니다. 검색은 내가 아는 낱말로만 물을 수 있으니까요.
방법이랄 것도 없지만 몇 가지 해보시면 좋은 게 있죠.
평소 안 가는 칸으로 가십시오. 자기 분야 반대편이요. 책등만 보고 한 바퀴 도십시오. 뽑지 마시고요. 그러면 훨씬 많이 지나갑니다. 세 권만 뽑아 첫 쪽을 보십시오. 다 덮고 나오셔도 됩니다. 대출 카트를 보십시오. 남들이 방금 반납한 책이 거기 있습니다. 저는 이 자리를 제일 좋아하죠.
여기가 제일 드리고 싶은 말씀입니다.
빌릴 게 없으면 도서관에 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죠. 그런데 여기는 빌리러만 오는 곳이 아닙니다. 앞서 자리를 빌려드리는 곳이기도 하다고 적었는데, 걷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빈손으로 나가시는 걸 미안해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저희는 그날 몇 권 나갔는지로 그 사람을 세지 않습니다.
무엇을 찾을지 정하지 않은 사람만이 찾으려 하지 않았던 것을 만난다.
다음에 오셨을 때는 두 권을 빌려 가셨습니다. 그 세 바퀴 동안 봐뒀던 책이라고 하시더군요.
그러니 그 한 시간은 아무것도 안 한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고르는 데 쓴 시간이었죠. 다만 그날 손에 든 게 없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