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일이 하나도 없었는데 저녁이 되면 마음이 이상하게 붕 뜨는 날이 있더라고요.
큰일이 있었던 날은 오히려 마음이 단순해요. 할 일이 정해져 있으니까요.
그런데 아무 일도 없었던 날은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저녁에 앉아 있으면 뭔가 놓친 것 같고, 뭔가 해야 했던 것 같고, 그런 기분이 슬그머니 올라오는걸요.
언젠가 그런 날 저녁에 괜히 서랍을 전부 열어봤어요. 뭘 찾는 것도 아니면서 하나씩 열고 다시 닫았네요. 그러고 나서야 알았어요. 뭔가를 찾은 게 아니라 할 일을 찾고 있었던 거군요.
바쁠 때는 마음이 조용해지고 한가할 때 마음이 시끄러워지는 게 좀 이상하죠. 그런데 생각해보면 순서가 그렇게 되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조용한 날에 불안이 커지는 게 아니라, 원래 있던 것이 그날 처음 보이는 거겠지요. 없던 게 생긴 게 아니라 가려져 있던 게 드러난 거고요.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덜 억울하더라고요. 조용한 날이 나를 불안하게 만든 게 아니었네요.
하루를 일한 양으로만 재면 조용한 날은 전부 빈 날이 됩니다. 그런데 그 계산이 좀 이상해요.
밥을 차려 먹었고, 빨래를 널었고, 창밖을 한참 봤고, 오후에는 잠깐 졸았고요. 이걸 전부 아무것도 아닌 걸로 치면 하루가 통째로 사라져버리는걸요.
저는 요즘 그 계산법을 좀 의심하고 있어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말은 사실 나쁜 일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잖아요. 그건 꽤 드문 일인데도 우리는 그걸 잘 안 세어주더라고요.
조용한 하루를 견디는 힘이 생기면, 시끄러운 하루도 조금은 덜 무섭습니다.
거창한 걸 하려고 하면 오히려 더 붕 뜨더라고요. 저는 그럴 때 손이 하는 일을 하나 만들어요.
설거지를 하거나, 화분에 물을 주거나, 창문을 한 번 열었다가 닫거나요. 마음을 정리하려고 하면 잘 안 되는데 손을 움직이면 마음이 뒤따라오는 순간이 있더라고요.
그러고도 남는 저녁이면 그냥 앉아 계셔도 괜찮아요. 불안이 하는 말을 다 믿어줄 필요는 없는걸요. 오늘 아무 일도 없었다는 사실은 그냥 사실이고, 거기에 의미를 급하게 붙이지 않아도 됩니다.
조용한 저녁에 혼자 앉아 있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그걸 알고 나면 그 저녁이 조금은 덜 조용해지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