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게 흠은 아니더라고요. 다만 예민한 사람이 더 자주 지치는 건 사실이겠지요.
주말에 들은 농담 하나가 집에 와서도 계속 걸렸어요.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다 웃고 넘겼는데 저만 안 넘어갔네요.
같은 방에 있어도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양이 다릅니다. 누군가는 말의 내용만 듣고, 누군가는 말투와 표정과 그 뒤의 침묵까지 같이 받아요.
많이 받으면 당연히 더 무겁죠. 예민한 게 아니라 수신량이 많은 것에 가까운걸요. 그러니 유난스럽다는 말은 좀 억울한 데가 있겠지요.
같은 세계에 살아도, 각자가 사는 세계는 그 사람이 느끼는 만큼이다.
저는 예민함을 없애야 할 것으로 보지 않아요. 그 감각으로 남의 기분이 가라앉은 것도 제일 먼저 알아채니까요.
누가 오늘 좀 힘들구나 하는 걸 먼저 보는 사람들이 대개 이쪽입니다. 아프게 받는 능력과 다정하게 알아채는 능력이 같은 신경에 붙어 있더라고요. 하나만 떼어낼 수는 없는 셈이군요.
무던한 사람이 부러웠던 적도 많았어요. 같은 말을 듣고도 저녁이면 잊어버리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부러워한다고 제 신경이 그쪽으로 바뀌지는 않더라고요. 타고난 감도를 바꾸려 애쓰는 일이 제일 소모적이었네요.
그래도 하루 종일 걸려 있으면 사람이 남아나지 않아요. 저는 그럴 때 그 장면을 말로 옮겨 적습니다.
머릿속에 있을 때는 계속 커지는데 문장으로 옮기면 크기가 정해지더라고요. 종이 위에서는 그게 그냥 농담 한 줄이었네요. 사라지지는 않지만 더 자라지도 않는걸요.
무뎌지라는 말을 저는 잘 못 하겠어요. 무뎌지면 아픈 것만 안 느껴지는 게 아니라 좋은 것도 같이 흐려지니까요.
그러니 오늘 혼자 오래 걸려 계셨다면, 고쳐야 할 성격으로 두지 않으셨으면 해요. 저도 같은 쪽 사람이거든요. 잘 느끼는 사람끼리 그 무게를 나눠 드는 건 할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