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저녁에는 약속을 취소하고 싶어질 때가 있네요. 사람이 싫은 건 아닌데, 나가서 웃고 맞추고 돌아올 생각을 하면 벌써 지치는 그런 마음이요. 저도 그 마음을 잘 알아요.
사람 만나는 게 버겁다는 건 내가 차가워서가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관계에 마음을 많이 쓰는 사람일수록 이 피로를 자주 느끼는걸요.
한 철학자가 사람 사이의 거리를 겨울 고슴도치에 빗댔어요. 추워서 서로 붙으면 가시에 찔리고, 아파서 떨어지면 다시 춥다는 거죠. 그래서 찔리지도 얼지도 않는 적당한 거리를 평생 찾는다고요.
사람이 버거운 건 이 두 마음이 동시에 있기 때문이더라고요.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과 다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늘 같이 오니까요. 그 사이에서 계속 거리를 조절하는 일이 은근히 힘을 많이 쓰게 하는걸요.
고슴도치들은 서로의 온기가 필요했지만, 가시 때문에 알맞은 거리를 배워야 했다.
이 비유를 이렇게 읽었어요. 적당히 거리를 두는 건 사람을 밀어내는 게 아니라, 오래 곁에 있기 위한 지혜라고요. 너무 붙으면 서로 상처를 주니까요. 조금 떨어져 있는 게 관계를 끊는 게 아니라 지키는 일일 때도 있겠지요.
관계가 버거운 사람은 대개 관계를 소홀히 해서가 아니라 너무 잘 챙기려 해서 지치더라고요. 모두의 기분을 살피고, 서운하게 할까 조심하고요. 그렇게 다 챙기다 보면 정작 내 마음은 뒷전이 되겠지요. 관계의 피로는 무심함이 아니라 과한 정성에서 오는 경우가 많은걸요.
저는 사람이 버거울 때, 억지로 나가기보다 하루쯤 혼자 온기를 채워요. 그러고 나면 이상하게 다시 사람이 그리워지더라고요. 떨어져 있는 시간이 오히려 다음 만남을 편하게 해주는걸요.
사람 만나는 게 버겁다면, 그 마음을 냉정함으로 여기지 않아도 돼요. 가까움과 거리 사이에서 지친 것뿐이니까요. 무리해서 다가가는 대신, 오늘은 알맞은 거리에서 잠시 혼자 온기를 채워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