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어놓는 게 늘 도움이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어떤 날은 말하는 일 자체가 더 지치는걸요.
무슨 일 있냐는 메시지를 사흘째 열었다 닫기만 했어요. 답장 칸에 커서만 두고 있었네요.
말하려면 처음부터 정리를 해야 합니다. 누가 무슨 말을 했고 내가 왜 그랬는지를요.
그 정리를 하는 동안 그 일을 한 번 더 겪게 되는걸요. 이미 지친 사람에게는 그 과정이 또 하나의 노동이겠지요. 그래서 말문이 막히는 게 아니라 말할 힘이 없는 셈이군요.
우리는 종종 위로가 아니라 조용함을 구한다.
말을 꺼내면 상대의 반응도 같이 옵니다. 걱정하는 얼굴이나 조언이나 놀란 표정 같은 것들로요.
그러면 이번에는 그 반응을 받아주는 일이 제 몫이 되더라고요. 괜찮다고 안심시키고 그 정도는 아니라고 수습하게 되는걸요. 결국 위로를 받으러 갔다가 상대를 달래고 돌아오는 날도 있었어요.
다들 각자 무거운 걸 들고 살잖아요. 거기에 내 몫까지 얹기가 미안해서 삼키는 경우도 많더라고요.
특히 아끼는 사람일수록 더 못 하겠습니다. 이 사람이 오늘 밤 나 때문에 잠을 설칠까 봐서요. 그렇게 아끼는 마음이 말문을 닫는 일도 있는 셈이겠지요.
이럴 때 억지로 털어놓으라는 말을 저는 잘 안 해요. 말하지 않은 채로도 지나가는 밤이 있으니까요.
대신 방을 조금 어둡게 하고 빗소리를 켜둡니다. 아무것도 정리하지 않고 그냥 앉아 있는 시간이 필요하더라고요. 마음을 다루려 들지 않고 그저 시간을 흘려보내는 편이 나은 날도 있는걸요.
털어놓지 못하는 게 마음을 닫은 건 아니에요. 아직 정리가 안 된 것뿐이겠지요.
그러니 오늘 아무한테도 말을 못 하셨더라도 스스로를 답답한 사람으로 두지는 않으셨으면 해요. 저는 말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자리도 자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인걸요. 준비되면 그때 한 문장만 꺼내셔도 충분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