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에서 돌아온 날,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신발도 못 벗고 벽에 기대 서 있었어요.
나쁜 자리가 아니었거든요. 오히려 좋았어요. 웃기도 많이 웃었고요. 그런데 문이 닫히는 순간 다리에 힘이 쭉 빠지더라고요.
한동안은 이게 이상했어요. 힘든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왜 이러나 싶어서요.
그러다 알게 됐습니다. 지친 건 자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계속 켜져 있었기 때문이더라고요. 표정을 살피고, 말이 끊기면 채우고, 분위기가 처지면 하나 던지고요. 그게 다 힘을 쓰는 일인걸요.
즐거움과 편안함이 같은 게 아니라는 걸 저는 좀 늦게 알았어요.
웃는 게 쉬는 거라고들 하잖아요. 저는 그 말이 반만 맞다고 생각해요.
혼자 웃는 건 쉬는 게 맞겠지요. 그런데 여럿 앞에서 웃는 건 대개 주고받는 일이에요. 상대의 말에 반응해줘야 하고, 반응이 늦으면 안 되고, 크기도 맞춰야 하니까요. 그건 노동에 가까운 데가 있는걸요.
사교란 서로에게 자신의 일부를 감추기로 한 약속이며, 그 약속을 지키는 데에는 언제나 대가가 따른다.
특히 힘든 날이 있어요. 그 자리에서 내가 유난히 괜찮은 사람이었던 날이요.
남 얘기를 오래 들어주고, 서운한 말이 나와도 웃어넘기고, 하고 싶던 말은 삼켰던 날이지요. 그런 날은 집에 와서 유난히 텅 비어 있는걸요. 밖에서 쓴 만큼 안이 얇아진 거니까요.
저는 그럴 때 자책까지 얹지는 않으려고 해요. 잘한 일을 하고 지친 건데, 지쳤다고 또 나를 나무라면 남는 게 없겠지요.
요즘은 모임에서 나온 뒤에 바로 집으로 안 들어가요. 한 정거장쯤 걷거나, 잠깐 어디 앉았다 들어옵니다.
그 십 분이 이상하게 크더라고요. 켜져 있던 걸 끄는 데도 시간이 좀 필요한 모양이에요. 바로 집에 들어와 버리면 그 켜진 상태가 방까지 따라 들어오는걸요.
집에 오자마자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 있는 시간을 저는 게으름이라고 안 불러요. 그건 끄는 중인 거지요.
그렇다고 사람을 안 만나는 쪽으로 가면 또 다른 게 비더라고요. 저도 몇 번 해봤는데 그건 그것대로 힘들었어요.
그래서 요즘은 나가되 돌아올 시간을 미리 정해두는 편이에요. 끝까지 남아 있어야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니까요. 먼저 일어난 날이 오히려 그 모임을 오래 가게 하더라고요.
오늘 좋은 자리에 다녀왔는데 돌아오는 길이 무거우셨다면, 그건 그 자리가 나빴다는 뜻이 아니에요. 그만큼 애를 쓰셨다는 뜻인걸요. 신발도 못 벗고 벽에 기대 계셨다면 잠깐 그렇게 계세요. 저도 그러고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