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정리는 청소가 아니라 지난 몇 주를 확인하는 일에 가깝더라고요. 저는 그게 좀 부담스럽습니다.
사놓고 안 뜯은 두부가 두 모 나왔어요. 잘 챙겨 먹겠다고 산 것들이었네요.
냉장고 안쪽에 있는 건 대개 계획입니다. 이번 주에는 국을 끓이겠다거나 아침을 챙기겠다거나 하는 것들이죠.
그 계획이 실행되지 않으면 재료가 그대로 상해요. 버리는 게 음식이 아니라 그때의 마음처럼 느껴지는걸요. 그래서 손이 잠깐 멈추는 거겠지요.
우리는 늘 살아갈 준비만 하다가, 정작 사는 일을 미룬다.
버릴 때마다 돈이 아깝다는 생각보다 게을렀다는 판정이 먼저 오더라고요. 저는 이 순서가 좀 가혹하다고 느꼈어요.
그 몇 주 동안 아무것도 안 한 게 아닌데도, 냉장고는 못 한 것만 보여주니까요. 잘 지낸 날은 흔적을 안 남기고 못 챙긴 날만 남는 셈이군요. 증거가 한쪽으로만 모여 있는걸요.
혼자 사는 사람은 특히 그렇더라고요. 한 봉지가 늘 한 끼보다 크게 나오니까요. 남기지 않으려면 며칠을 같은 걸 먹어야 하고, 그러다 질리면 결국 남는 셈이군요. 게으름이라기보다는 단위가 안 맞는 문제였어요.
예전에는 버리면서 다음 주에는 꼭 챙겨 먹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러면 다음 정리 때 또 실패한 사람이 됩니다.
요즘은 다짐을 안 붙이고 그냥 버려요. 대신 다음에 살 때 양을 줄입니다. 마음을 고치는 것보다 장바구니를 줄이는 편이 훨씬 잘 되더라고요. 사람은 잘 안 바뀌지만 양은 바뀌는걸요.
다 버리고 나면 냉장고가 좀 헐거워집니다. 저는 그 빈 칸을 보는 게 나쁘지 않네요.
못 챙긴 날이 있었다는 게 확인되긴 했지만, 확인했으니 오늘은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면 되겠지요. 오늘도 뭔가를 버리며 마음이 조금 상하셨다면, 그건 잘 살고 싶은 사람만 겪는 일인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