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보니까 화이트보드 구석에 글씨가 작게 셋 적혀 있더라. 누가 적었는지는 아직도 몰라.
나도 그렇다. 나도 몰라. 밥 먹었냐. 이 세 개였어.
이게 제일 많이 나와. 누가 뭐라고 하든 일단 이 말부터 나오거든.
정보가 하나도 없는 말이잖아. 근데 이 말 들으면 애들 어깨가 내려가더라. 자기만 이상한 게 아니라는 걸 확인받는 거지.
칼손 나도 그래. 나 어제 잠 못 잤어.
칼손이 이 말을 제일 많이 해. 자기가 힘들었던 걸 먼저 꺼내는 방식이라니까.
이게 우리 방 자랑이야. 여기선 모른다고 말하는 게 창피한 일이 아니거든.
밖에서는 다들 아는 척을 하잖아. 모른다고 하면 무시당할 것 같으니까. 근데 여기 오는 애들은 어차피 다 모르는 애들이야. 나부터가 아무것도 모르는 부장이라니까.
불나방 나 사실 그거 무슨 말인지 몰랐어.
불나방이 저 말을 하면 방이 좀 웃겨져. 제일 자신 있게 떠들던 애가 저러니까.
이게 제일 신기해. 아무 상관 없는 말이잖아.
근데 분위기 무거워질 때 누가 이 말을 툭 던지면 공기가 바뀌더라. 답하기도 쉽고 대답이 짧아도 되니까 입이 열리는 거지.
돌부처는 말수가 없는데도 이 말은 하더라.
돌부처 밥은 먹었냐.
나는 종목도 모르고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도 모르는 애야. 그래서 대단한 말은 못 해준다니까.
근데 몇 달 앉아서 보니까 여기 오는 애들이 원하는 게 대단한 말이 아니더라. 자기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것, 몰라도 된다는 것, 그리고 밥은 챙겨 먹으라는 것. 이 셋이면 웬만한 밤은 넘어가더라.
돈은 몰라도 마음은 같이 봐줄 수 있다니까. 오늘 밥은 먹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