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아리방 화이트보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싹 지워져. 애들이 아무거나 쓰고 가니까 안 지우면 못 봐준다니까.
근데 왼쪽 아래 귀퉁이는 몇 년째 그대로야. 거기만 지우개가 안 지나가서 색이 좀 뜨거든. 처음 온 애들은 그게 뭐냐고 꼭 물어보더라.
거기 이렇게 적혀 있어. 여기서 운 건 여기서 잊는다.
내가 들어오기 훨씬 전부터 있었대. 몇 기 선배가 썼다는 말도 있고 그냥 누가 장난으로 썼다는 말도 있고.
나는 후자에 걸겠다니까. 글씨가 되게 대충이거든. 근데 그게 더 좋아. 대단한 사람이 남긴 문장이면 부담스럽잖아.
이게 웃기려고 써놓은 게 아니야. 우리 방에서는 애들이 진짜 운다.
크게 우는 건 아니고, 책상에 엎드려서 한참 안 일어나는 정도. 그럼 다들 아무 말 안 하고 자기 할 거 해. 누가 등 두드리고 그런 것도 없어. 그냥 옆에 있어주는 거지.
돌부처 앉아 있어.
불나방 야, 물 마셔.
칼손 나는 저번 주에 저 자리에 엎드려 있었거든.
애들이 왜 굳이 여기까지 와서 우냐면, 밖에서는 이 얘기를 꺼낼 데가 없어서야.
집에서 말하면 그러게 왜 했냐는 소리부터 나오잖아. 친구한테 말하면 얼마 잃었냐고 먼저 물어보고. 둘 다 듣고 싶은 말이 아니거든.
여기서는 아무도 얼마냐고 안 물어봐. 그게 규칙이라기보다 그냥 다들 안 궁금해하더라. 자기도 겪어봤으니까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아는 거지.
처음엔 나도 저 문장을 좀 이상하게 봤어. 잊으라니, 그게 되냐고.
한참 지나고 알겠더라. 저건 잊으라는 명령이 아니라 여기 두고 가도 된다는 말이야. 문 밖까지 들고 나가서 하루 종일 곱씹지 말고, 이 방에 놓고 가라는 거지.
실제로 그렇게 되긴 해. 여기서 한바탕 하고 나간 애들이 다음 날 학교에서는 멀쩡하더라. 어디 풀 데가 하나 있으면 사람이 그렇게 무너지진 않는다니까.
한 번은 어떤 애가 저거 촌스럽다고 지우자고 했거든. 다들 웃었는데 아무도 안 지웠어.
나도 그때 알았어. 저 문장이 걸려 있는 게 아니라, 저기 저게 있으니까 애들이 여기 와서 우는 거구나 하고. 허락이 붙어 있는 셈이지.
동아리방에 대단한 게 있는 건 아니야. 종목 알려주는 애도 없고 잘 아는 애도 없어. 근데 왜 안 없어지냐면 저 한 줄 때문이거든.
나는 부장 하는 동안은 저거 안 지울 거야. 다음 부장한테도 안 지우는 거라고만 말해두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