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내리던 비가 어제 그쳤어요. 아침에 창밖이 환해진 게 커튼 너머로도 느껴지더라고요.
그런데 커튼 끝만 잡고 한참 서 있었습니다. 걷으면 좋을 걸 알면서도 손이 안 가더군요. 아니, 그렇게 말하면 안 되겠네요. 손이 안 가는 게 아니라 갤 준비가 안 됐던 거지요.
흐린 날에는 마음이 가라앉아도 티가 안 나요. 밖이랑 안이 같으니까요.
그런데 날이 개면 그 차이가 드러납니다. 다들 밝아졌는데 나만 그대로인 게 눈에 보이는걸요. 그때부터는 가라앉은 것 위에 뒤처졌다는 생각이 하나 더 얹히더라고요.
날씨가 나를 도와주지 않는 날이 있다는 걸, 저는 좀 늦게 알았어요.
비가 그치는 데는 몇 시간이면 되지만 마음은 그렇게 빨리 안 바뀌는걸요.
며칠 젖어 있던 게 볕 한 번에 마르지는 않으니까요. 빨래도 그렇잖아요. 해가 났다고 바로 걷어 오면 속은 아직 축축한 채로 개켜지는걸요.
세상은 우리에게 즉시 회복할 것을 요구하지만, 회복은 원래 그런 속도로 오지 않는다.
날 좋으니까 나가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저도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해서 몇 번 해봤어요.
그런데 준비가 안 된 채로 나가면 밖의 밝음이랑 자꾸 부딪히더군요. 사람들 웃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고, 돌아오는 길엔 나갈 때보다 더 무거워져 있었어요.
그래서 요즘은 밖으로 안 밀어붙입니다. 대신 창만 조금 열어둬요. 볕을 쬐는 게 아니라 그냥 밖이 있다는 걸 확인하는 정도로요. 그 정도는 견딜 만하더라고요.
이건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요. 오래 흐려 있으면 그 상태에 손이 익어요.
기대를 안 하니까 실망도 없고, 아무것도 안 해도 날씨 탓을 할 수 있으니 편한 데가 있는걸요. 그래서 갤 때 오히려 서운한 마음이 슬쩍 드는 겁니다. 핑계가 하나 없어지는 거니까요.
저는 그 마음을 나쁘게 안 봐요. 오래 젖어 있던 사람이 마르는 걸 무서워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겠지요.
제가 아는 건 하나예요. 마음은 날씨보다 늦게, 그렇지만 대체로 개기는 하더라고요.
오늘 안 개었다고 안 개는 게 아니라 아직 순서가 안 온 것뿐인걸요. 남들 커튼이 다 걷혔어도 내 것만 며칠 늦게 걷힐 수 있고, 그건 게으른 것도 잘못된 것도 아니겠지요.
오늘 창밖은 밝은데 안쪽만 그대로였다면, 그것도 그냥 오늘의 날씨예요. 저는 커튼 끝을 잡고 서 있던 그 아침을 실패한 아침이라고 부르지 않기로 했어요. 밖이 밝다는 걸 알고는 있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