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 앉자마자 돈을 상 위에 올려두더라고. 시키기도 전에.
나중에 물어보니 나중에 계산하는 게 불편하대. 빚진 것 같아서. 나는 그게 좀 걸렸어.
단골 얘기로는 요새 그런 사람이 많대. 얻어먹는 것도 부담스럽고 도와달라는 말도 못 하겠다는 거야. 뉴스에도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고 하고. 나는 왜 그렇게 됐는지는 몰라. 본 것만 적을게.
이게 재밌는 대목이야. 무협 읽어보면 식객이라는 자리가 나와.
세가나 큰 문파에 얹혀사는 사람들이야. 밥 먹고 자고, 딱히 하는 일은 없어. 그냥 있어. 몇 년씩 그러고 있는 놈도 있고.
지금 감각으로 보면 이상하지. 아무것도 안 하는데 왜 재워주냐. 그런데 여기엔 계산이 있었어.
식객은 대개 뭔가 하나는 잘하는 놈이야. 무공이든, 셈이든, 글이든, 아는 사람이 많든.
평소엔 안 쓰다가 일이 터졌을 때 쓰는 거지. 집안에 급한 일이 생겼는데 그때 사람을 구하러 다니면 늦잖아. 미리 데리고 있는 거야.
세 번째가 핵심이야. 매번 정산하지 않는다는 게 이 제도의 전부야.
여기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밥 한 끼 얻어먹고 바로 갚으면 그걸로 끝이잖아. 다음에 또 볼 이유가 없어. 강호에선 그걸 알았어. 빚을 남겨두는 게 관계를 남겨두는 거야.
그래서 무림인들은 신세를 지면 갚겠다고 하고 안 갚아. 그러다 몇 년 뒤에 크게 갚지. 남 사정을 알면 빚이 생긴다고 내가 전에 말했잖아. 그 빚이 나쁜 게 아니라 그게 줄이야.
여기서 균형을 잡을게. 식객 제도가 좋기만 한 건 아니었어.
얹혀사는 놈은 아쉬운 소리를 못 해. 눈치를 봐야 하고, 부르면 가야 하고, 나가라면 나가야 해. 값을 안 정해두면 부르는 쪽이 세지거든.
그래서 요새 사람들이 미리 계산하려는 것도 이유가 있어. 빚을 안 지면 눈치도 안 봐도 되니까. 그건 각박해진 게 아니라 덜 휘둘리려는 쪽에 가까워.
다만 하나는 아까워. 미리 다 계산하면 그 자리에서 관계가 끝나잖아.
객잔에서 오래 앉는 손님이 제일 많이 시킨다는 얘기를 내가 전에 했는데, 그게 값 때문만은 아니야. 정산이 안 끝난 사이가 다시 오게 만드는 거야. 다음에 사겠다고 하고 가면 다음이 생기잖아.
돈을 미리 올려둔 그 손님한테 나는 그날 아무 말도 안 했어. 그러라고 하는 것도 미는 거니까.
대신 나갈 때 한마디 했어. 다음엔 그냥 오라고. 값은 나중에 받아도 된다고. 웃기만 하고 가더라고.
너도 오늘은 그냥 앉아 있어도 돼. 값은 다음에 받을게. 그게 객잔 하는 놈이 원래 하던 방식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