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연 언니가 저녁 먹다 말고 좀 억울해했어요.
강미연 다들 그 얘기를 하더라고요. 어느 쪽이 요새 잘나간다고. 나만 몰랐대요.
박예슬 언니는 그걸 누구한테 들었는데요? 그 사람은 또 누구한테 들었을까요?
예슬이가 방향을 바꿔놨어요. 뭐가 유행이냐가 아니라 그 말이 어떤 순서로 우리한테 왔느냐를 물은 거예요. 이게 오늘 알아볼 거리인 셈이죠.
저는 이게 배추값으로 이해가 됐어요.
배추가 그해 어떤지 제일 먼저 아는 사람은 밭에 있는 사람인 거예요. 심어놓고 매일 보니까요. 값이 붙기 전부터 손끝으로 아는 셈이죠. 그다음이 도매하는 사람이고, 그다음이 시장 상인인 거예요. 마트 매대에 값이 붙어야 아는 게 저희 같은 사람인 거예요.
회사 얘기도 이 줄을 그대로 타는 셈이죠. 어느 집에 일감이 몰리면 거기 다니는 사람이 먼저 알아요. 야근이 늘고 사람을 더 뽑으니까요. 밭에 나가 있는 사람하고 같은 자리인 셈이죠. 그다음이 거래하는 회사들이고, 그다음이 그 바닥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인 거예요. 기사하고 영상에 이름이 붙는 건 그다음인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늦게 듣는 게 아니라 줄 끝에 서 있는 셈이죠. 마트에서 배추값을 아는 사람을 두고 늦었다고 하지는 않잖아요.
여기서 재밌는 게 하나 있어요.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려면 그 얘기에 이름이 붙어야 하는 거예요.
이름이 없으면 옮길 수가 없는 거예요. "그거 있잖아 그 뭐냐, 배 만드는 데" 하면 얘기가 거기서 끊기잖아요. 이름이 붙는 순간부터 말이 손잡이가 생겨서 이 사람 저 사람 손에 옮겨 다니는 거예요.
그런데 이름은 항상 일이 벌어진 다음에 붙어요. 무슨 일이 있고 나서 그걸 부르는 말이 생기는 거지, 이름이 먼저 생기고 일이 따라오는 게 아닌 거예요.
그래서 이름이 우리 귀에 닿았다는 건 이미 몇 다리를 건너왔다는 뜻인 셈이죠. 동네 맛집을 우리가 언제 아느냐면 줄이 늘어선 다음이잖아요. 줄이 곧 이름인 거예요. 줄을 보고 아는 거지 맛을 보고 아는 게 아닌 셈이죠.
박예슬 그럼 늦게 들은 사람은 늘 손해 보는 자리 아닌가요?
저는 그렇게까지 볼 일은 아니라고 봐요. 늦게 아는 게 정해진 구조라면, 억울해하는 데 힘을 쓰는 게 더 아까운 셈이죠.
대신 바뀌는 게 하나 있어요. 줄 끝에 선 사람은 급한 얘기를 쫓으면 계속 늦어요. 급한 얘기일수록 앞줄 사람들이 이미 다 나눈 거니까요. 남은 자리를 두고 다투는 것과 같은 거예요.
그런데 안 급한 얘기는 줄이 없어요. 그 집이 뭘 만드는 집인지, 어떻게 벌어서 어떻게 굴러가는지. 이런 건 오늘 알아도 되고 내년에 알아도 되는 거라 아무도 줄을 안 서는 거예요. 늦게 온 사람한테 남아 있는 자리가 거기인 셈이죠.
그래서 저희는 유행하는 얘기를 쫓아가지 않기로 했어요. 미연 언니가 이름을 물어오면, 예슬이가 뭉뚱그린 데를 자르고, 제가 부엌 말로 옮기는 것까지만 해요.
앞서 알아본 것들도 다 그런 식이었어요. 엔진 만드는 집하고 열차 만드는 집이 어떻게 다른지, 배 만드는 집이 왜 주문을 먼저 받는지. 뉴스가 식어도 안 변하는 얘기들인 거예요.
강미연 그럼 나만 몰랐던 게 아니라 순서가 그런 거였네요. 그건 좀 낫대요.
낫고말고요. 남들 다 아는 걸 늦게 들었다고 조바심 낼 일은 아니라는 말이에요. 줄 끝은 늦은 자리가 아니라 그냥 우리 자리인 거예요.
우리가 알아낼 수 있는 건 결과가 아니라 태도인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