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 동안 자기가 왜 이런지 말씀하시고는 아무것도 안 정하고 일어나신 분이 계셨습니다.
말을 안 하신 게 아닙니다. 많이 하셨습니다. 다만 방향이 없었습니다.
자책과 자기연민은 둘 다 화살이 나에게 오는 상태입니다.
둘 다 남을 탓하지 않고, 둘 다 오래 붙들게 됩니다. 겉으로는 반대처럼 보이는데요. 하나는 몰아붙이고 하나는 감싸니까요.
그런데 둘 다 고칠 것을 안 찾습니다. 그 점에서는 같습니다.
자책은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반복해서 확인하는 일입니다.
그때 왜 그랬을까, 나는 왜 이럴까. 문장이 나를 치는 쪽으로 갑니다. 그러면 그 순간 정신은 번쩍 드는데 남는 게 없습니다. 무엇을 다르게 할지는 안 나오니까요.
자책은 반성과 다릅니다. 반성은 다음을 정하고 끝나는데 자책은 끝이 없습니다.
자기연민은 내가 참 힘들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입니다.
나는 왜 이렇게 운이 없을까, 아무도 내 사정을 모른다. 문장이 나를 감싸는 쪽으로 갑니다. 그러면 잠깐 편해집니다. 그런데 이것도 남는 게 없습니다.
자기연민이 흉은 아닙니다. 정말 힘들 때는 필요합니다. 다만 오래 머물면 그 자리가 굳습니다.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앞의 두 개는 답이 안 나오는 문장입니다. 세 번째만 답이 나옵니다.
여기가 오늘의 요점입니다.
자책과 자기연민은 서로 오갑니다. 몰아붙이다 지치면 감싸고, 감싸다 답답해지면 다시 몰아붙입니다. 그래서 한 시간이 갑니다.
그런데 두 방향 다 질문이 나에 대한 것입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냐를 계속 묻는 거죠. 그 질문에는 답이 없습니다. 답이 없으니 끝이 없겠지요.
두 쪽 중 어디 계시든 할 일은 같습니다. 질문을 바꾸는 것입니다.
나는 왜 이런가를 그때 무엇이 어긋났나로 바꾸시면 됩니다. 주어를 나에서 그 일로 옮기는 것이지요. 그러면 답이 나옵니다. 짧게 나오고 끝납니다.
그리고 시간을 정해두시면 좋습니다. 십 분만 하고 그다음에는 한 줄을 적는 겁니다. 한 줄이 안 나오면 그건 아직 답할 재료가 없는 일입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방향은 반대입니다. 답이 나오는 질문인지만 보시죠.
구분이 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