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창가에 앉아 있다 보면, 어깨가 축 처진 채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네요. 분명 쉬지 않고 달려왔는데 도착한 데가 없는 것 같은 얼굴이네요. 저도 그 표정을 잘 알아요.
열심히 하는데 늘 제자리 같은 느낌. 이건 게을러서 오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성실한 사람일수록 이 느낌을 자주 만나는걸요.
한 사람이 이런 걸 짚었어요. 우리는 목표에 닿으면 만족할 거라 믿지만, 정작 닿는 순간 그 목표는 당연한 것이 되어버린다고요. 그래서 도착점은 늘 한 걸음 더 앞으로 물러나 있겠지요.
그러니 제자리인 느낌은 착각이 아니에요. 도착선 자체가 계속 움직이니까, 아무리 가도 도착이 안 오는 것처럼 느껴지는 게 당연한걸요. 문제는 내 걸음이 아니라, 도착이라는 게 원래 그렇게 생긴 거겠지요.
사실 우리를 지치게 하는 건 걷는 일 자체가 아닌 것 같아요. 언제 도착하나 하고 계속 재는 마음이 더 지치게 하네요. 목적지에 눈을 두고 걸으면 지금 걷는 길은 늘 부족해 보이니까요.
바꿀 수 없는 걸 계속 노려보면 마음만 무거워져요. 도착선이 움직이는 건 내가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닌걸요.
제자리인 느낌이 들 때 제일 힘든 건, 옆 사람들은 다 저만치 가 있는 것 같은 기분이더라고요. 그런데 가만 보면 그 사람들도 자기 나름의 제자리를 느끼고 있더라고요. 우리는 남의 도착만 보고 내 걸음만 재니까요. 겉으로 앞서가 보이는 사람도 속으로는 똑같이 도착이 안 온다고 느끼고 있겠지요. 그러니 나만 뒤처진 것 같은 그 느낌도, 실은 다 같이 겪는 거네요.
저는 이걸 알고 나서 도착을 조금 내려놓게 됐어요. 언제 다 이루나를 재는 대신, 오늘 걸은 만큼만 봐요. 그러니 이상하게 걸음이 가벼워지더라고요.
노력해도 제자리인 느낌이 든다면, 어쩌면 걸음이 부족한 게 아니라 도착을 너무 오래 기다린 걸지도 모르겠네요. 바꿀 수 없는 도착선을 미워하길 잠시 멈추면, 지금 걷는 이 길이 조금은 덜 무거워져요. 그거면 오늘 하루는 충분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