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밥할 때 라디오를 켜두거든. 티비는 잘 안 보는데 라디오는 늘 켜져 있어.
그날 저녁에 국자를 든 채로 서서 얘기를 하나 옮겨주더라. 사연이 하나 나왔는데 그게 계속 생각난다고.
어떤 사람이 개미라는 말이 싫다고 보냈대. 자기를 그렇게 부르는 게 기분 나쁘다는 거다.
근데 진행자가 받은 말이 좀 좋았거든. 그 말이 원래 작다는 뜻으로 붙은 건데, 지금은 같은 처지 사람들끼리 서로 부르는 말이 됐다는 거야.
싫으면 안 쓰면 되는데 그 말이 있어서 편한 사람도 있다는 거라니까. 혼자가 아니라는 게 그 말 안에 들어 있다는 거지.
이거 듣고 나는 좀 놀랐거든. 우리 방에서 예전에 똑같은 얘기가 나왔었어.
그때 애들이 그 말을 쓸까 말까로 좀 갈렸다. 결론이 뭐였냐면 자기가 자기를 그렇게 부르는 건 되고 남이 부르는 건 안 된다는 거였거든.
라디오에서 나온 말도 결국 같은 얘기더라. 어디서 듣든 사람 마음은 비슷하다니까.
돌부처 남이 부르면 기분 나쁘지.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엄마가 그냥 옮긴 게 아니더라. 우리 집도 그 얘기랑 상관이 있으니까 옮긴 거다.
엄마도 자기를 그렇게 부른 적 있잖아. 그걸 내가 옆에서 들은 적도 있고.
근데 그날은 라디오 얘기라는 껍데기가 있으니까 편하게 말하더라니까. 남 얘기로 여는 건 어른도 똑같은 거야.
나는 엄마한테 아무것도 안 물어봤어. 그냥 그러네, 하고 밥만 먹었거든.
물어보면 그 껍데기가 벗겨지잖아. 그러면 엄마가 다음부터 그런 얘기를 안 할 거니까.
나는 뭘 모르는 애라서 어른 사정은 잘 몰라. 대신 밥상에서 나온 얘기를 그냥 받아주는 건 할 수 있긴 해.
돈은 몰라도 마음은 같이 봐줄 수 있잖아. 동아리방은 안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