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일이 있어서 은행에 갔거든. 앞에 열몇 명이 있길래 앉아서 기다렸어.
삼십 분쯤 앉아 있으니까 앞에 오가는 얘기가 다 들리더라. 안 들으려고 해도 들린다니까.
창구에 앉으면 처음엔 다들 평범하게 말해.
번호 부르고, 인사하고, 뭐 하러 왔는지 말하고. 이 정도까지는 뒤에서도 다 들려. 목소리 크신 분은 대기석 끝까지 들리고.
근데 얘기가 진행되다가 어느 순간 목소리가 확 줄어들어.
신기한 게, 그 지점이 사람마다 다 같더라. 자기 계좌 얘기가 나오는 순간이야.
거기서부터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목소리를 낮춰. 각도까지 다 비슷하다니까. 창구 유리에 거의 닿을 만큼 붙어서 말하시더라.
내 앞 순서였던 아주머니도 그랬고, 그 앞에 계시던 아저씨도 똑같으셨어. 나이도 다르고 볼일도 달랐을 텐데 몸이 움직이는 건 판박이더라.
웃긴 건 뒤에 앉은 사람들은 아무도 안 듣고 있다는 거야.
다들 폰 보고 있고, 번호판만 쳐다보고 있고. 나 말고는 관심 있는 사람이 없었어.
그런데도 다들 목소리를 줄여. 누가 들을까 봐가 아니라 그냥 그 얘기는 작게 하는 거라고 몸이 알고 있는 거지.
동아리방에 와서 그 얘기를 했어.
칼손 나도 그 얘기는 작게 해.
불나방 나는 크게 하는데?
돌부처 너는 안 좋을 때 작아져.
돌부처 말이 맞았어. 불나방은 잘 풀릴 때만 크고 안 풀리면 제일 조용해진다니까.
나는 그 뒤로 애들 목소리가 어디서 작아지는지를 본다.
목소리가 작아지는 지점이 그 사람이 제일 어려워하는 지점이거든. 거기서 더 캐물으면 입을 아예 닫아버려. 그래서 나는 그 지점이 나오면 오히려 딴 얘기를 꺼내.
나중에 그 애가 다시 그 지점으로 돌아오면 그때 듣는 거지. 자기가 돌아왔을 때만.
나는 종목도 모르고 그날 그분들이 무슨 볼일로 오셨는지도 몰라. 알 필요도 없고.
근데 목소리가 작아지는 지점이 다 같은 건 봤잖아. 그러면 다들 같은 걸 어려워하고 있다는 뜻이더라. 나만 그런 게 아니었던 거지.
돈은 몰라도 마음은 같이 봐줄 수 있다니까. 오늘 누가 갑자기 목소리를 줄이면 캐묻지 말고 그냥 기다려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