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에 뜬 이름을 확인하고도 벨이 끊길 때까지 그냥 들고만 있었어요. 나쁜 사람 전화도 아니었는걸요.
끊기고 나니까 오히려 마음이 놓이더라고요. 그러고는 그게 좀 이상해서 한참 앉아 있었네요.
전화벨이 울리면 내용을 알기 전에 몸이 먼저 움직여요. 어깨가 올라가고 숨이 얕아지고요.
무슨 일인지는 아직 모르는데 말이에요. 좋은 소식일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도 몸은 일단 대비부터 하는걸요.
저는 이게 전화라는 형식 때문인 것 같더라고요. 지금 당장 받아야 하고, 지금 당장 답해야 하니까요.
같은 얘기도 글로 오면 덜 무섭더라고요.
글은 읽고 나서 생각할 시간이 있잖아요. 뭐라고 답할지 고르고, 고쳤다가 지우고, 그러다 보내죠. 전화는 그게 안 되는걸요. 말하면서 동시에 생각해야 하니까요.
세 번째가 제일 크더라고요. 한 번 나간 말은 되돌릴 수가 없으니까요.
그런데 안 받고 넘기면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네요.
못 받은 전화가 하나 생기면 그때부터 그게 할 일이 돼요. 다시 걸어야 하는데, 미룰수록 왜 안 받았는지까지 설명해야 할 것 같아지고요. 그러다 며칠이 지나면 이제는 걸 수 있는 시점이 지나버린 것 같겠지요.
그래서 원래 별것도 아니었던 통화가 점점 커져요. 내용이 커진 게 아니라 미룬 시간이 얹힌 거군요.
답을 아는 사람은 아니지만 제가 해보고 좀 나았던 게 있어요.
전화가 무서운 건지, 그 사람이 무서운 건지, 아니면 그 얘기가 무서운 건지를 나눠보는 거예요. 셋이 다 다르더라고요.
전화라는 형식이 부담이면 먼저 짧게 글을 보내고 시간을 정해서 통화하면 훨씬 낫더라고요. 사람이 부담이면 그건 통화 방식으로 풀 일이 아니고요. 얘기가 부담이면 그 얘기 자체를 어떻게 할지가 먼저겠지요.
며칠 미뤄둔 전화를 걸 때 저는 길게 설명하려고 했었어요. 왜 못 받았는지부터요.
그런데 그게 오히려 통화를 무겁게 만들더라고요. 상대는 별로 신경도 안 쓰고 있었는데 제가 사과부터 하니까요. 요즘은 그냥 아까 못 받았다고 한마디 하고 본론으로 가는걸요. 그게 서로 편하더라고요.
그날 못 받은 전화는 다음 날 제가 걸었어요. 별일 아니었고요.
벨이 울릴 때 몸이 먼저 굳는 건 아직 그대로예요. 그게 없어질 것 같지는 않은걸요. 다만 그게 제가 예민해서 생긴 일은 아니겠지요. 하루에 답해야 할 게 너무 많았던 날일수록 더 심해지더라고요.
오늘 하나 못 받고 넘기셨어도 그건 미뤄둔 것뿐이에요. 없어진 게 아니니까요. 비 오는 날에 창가에 앉아서 그런 걸 하나씩 세어보면 대개 별거 아니더라고요. 저는 그 정도로 두는 편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