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 정리는 옷을 옮기는 일 같지만 실은 지난 계절을 확인하는 일이더라고요. 저는 그래서 매번 미룹니다.
태그도 안 뗀 셔츠가 한 장 나왔어요. 한 계절을 그대로 보냈네요.
살 때는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어디에 입고 갈 생각이었거나 이런 사람이 되고 싶었거나요.
그 자리에 못 갔거나 그런 사람이 안 됐으면 옷이 그대로 남는걸요. 옷장이 계획의 보관함처럼 되어버리는 셈이군요. 저는 그 앞에서 잠깐 서 있게 되더라고요.
우리는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그 물건을 쓰는 자신을 산다.
한 번도 안 입었으니 아깝고, 지난 계절에 안 입었으면 다음에도 안 입을 확률이 높죠.
그걸 알면서도 손이 안 가더라고요. 버리는 순간 그때의 계획도 같이 접는 셈이 되니까요. 그래서 대개는 다시 안쪽으로 밀어 넣게 되는걸요.
반대로 늘어질 때까지 입은 옷도 나옵니다. 저는 그쪽이 더 눈에 들어와요.
내가 어떤 하루를 자주 보냈는지가 거기 남아 있으니까요. 되고 싶었던 사람보다 실제로 산 사람이 옷장에 더 정확히 적혀 있는 셈이겠지요. 그 대조가 조금 겸연쩍더라고요.
옷장 전체를 정리하려 들면 하루가 다 갑니다. 그래서 저는 한 칸만 정합니다.
그 칸에서 확실히 안 입을 것 몇 개만 꺼내요. 나머지는 그냥 둡니다. 다음 계절에 또 보면 되니까요. 한 번에 다 정리하려는 마음이 오히려 정리를 막더라고요.
정리를 다 못 해도 계절은 바뀝니다. 옷장은 늘 조금 어수선한 채로 지나가고요.
그래도 그 안에 지난 몇 달이 들어 있다는 게 저는 나쁘지 않네요. 오늘 옷장 앞에서 마음이 좀 복잡하셨다면, 그건 지나온 계절이 있다는 뜻이겠지요. 다음 계절 옷은 천천히 꺼내도 되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