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지를 열었는데 원두가 번들거리면 다들 놀라세요. 상한 줄 아시는 분이 많거든요.
번들거리는 원두를 봉지째 들고 오신 손님이 계셨어요. 만져보니 손끝에 얇게 묻어나더라고요.
그 기름은 밖에서 묻은 게 아니에요. 원두 안에 원래 있던 성분이 표면으로 밀려 나온 거예요. 오래 볶을수록 안쪽 압력이 올라가서 밖으로 나오거든요.
그러니까 번들거린다는 건 강하게 볶았다는 표시에 가까워요. 상태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에요.
문제는 기름이 공기랑 잘 만난다는 거예요.
세 번째가 집에서 제일 자주 놓치는 부분이더라고요. 원두를 바꿨는데도 예전 맛이 계속 나면 대개 도구에 기름이 남아 있는 거예요.
그건 아니에요. 취향의 문제예요.
강하게 볶은 원두는 쓴맛과 묵직한 결이 살아요. 우유랑 섞었을 때 안 묻히고 버티는 것도 이쪽이고요. 그래서 라떼를 자주 드시는 분한테는 오히려 잘 맞아요.
반대로 산미나 가벼운 향을 좋아하시면 번들거리지 않는 쪽이 맞아요. 약하게 볶은 원두는 표면이 마른 편이거든요.
저희 가게도 두 가지를 다 둬요. 어느 쪽이 낫다기보다 뭘 마시느냐가 달라서요.
거창한 건 없어요.
하나, 조금씩 사세요. 기름이 나온 원두는 시간이 더 급해요. 이 주 안에 드실 만큼만 사시는 게 편해요.
둘, 상온에 밀폐해서 두세요. 냉장고에 넣으면 꺼낼 때마다 물기가 붙어요. 기름이랑 물기가 만나면 제일 빨리 상해요.
셋, 도구를 자주 닦으세요. 뜨거운 물로만 헹궈도 꽤 빠져요. 그라인더는 마른 솔로 털어내시고요.
원두를 바꿨는데 맛이 그대로면 원두가 아니라 도구를 의심해보세요.
봉지를 열고 손등에 한 알을 굴려보세요. 자국이 남으면 기름이 나온 원두예요.
그러면 앞으로 이 주 안에 쓰시고, 도구를 한 번 더 닦으시면 됩니다. 그것만 지키셔도 끝까지 맛이 버텨요. 저도 가게에서 이렇게만 해요.
번들거린다고 버리지는 마세요. 아까운 원두를 그렇게 보내신 분을 몇 번 봤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