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없는 것도 아닌데 내 편은 없는 것 같은 날이 있더라고요.
이게 좀 이상해요. 혼자 있을 때보다 여럿이 있을 때 더 그렇거든요.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제 얘기가 나왔다가 아무도 이어받지 않고 화제가 넘어간 적이 있었어요. 삼 초쯤 됐을 거예요. 그 삼 초가 그날 내내 남더라고요.
아무도 나쁜 뜻은 없었겠지요. 그냥 이어갈 말이 없었을 뿐인걸요. 그런데 그 자리에 있던 사람 중에 그 삼 초를 기억하는 건 저 하나였을 거예요.
생각해보면 저는 편을 꽤 크게 잡고 있었어요.
두 번째도 편인데 저는 첫 번째만 편으로 세고 있었네요. 그러니 매번 없다고 나왔던 거고요.
기준이 높아서 없는 건데 세상에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게 이 감각의 함정인 것 같아요.
이게 제일 아팠던 부분이에요.
저는 힘들다는 티를 잘 안 내는 편이었어요. 그러면서 속으로는 알아주기를 기다렸네요. 알아주지 않으니까 편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고요.
나중에 한 사람한테 지나가듯 말했더니 몰랐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좀 허탈했어요. 저는 시험을 냈는데 상대는 문제가 있는 줄도 몰랐던 거네요.
편은 생기는 게 아니라 알려주면서 만들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여기서 방향을 틀어서 전부 자기 탓으로 돌리시면 더 무거워져요. 그건 아니에요.
실제로 옆에 사람이 적을 수도 있고, 지금 상황이 그럴 수도 있고요. 편이 없다고 느끼는 데는 대개 그럴 만한 사정이 있는걸요. 그 감각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에요.
다만 그게 영원한 사실인 것처럼 굳어지는 게 문제인 것 같아요. 오늘 편이 없는 거지 앞으로도 없는 건 아닌걸요.
전부 필요한 게 아니었어요. 다 알아주는 사람은 원래 없고요.
한 사람한테 한 가지만 말해보세요. 전부 털어놓지 않으셔도 돼요. 오늘 좀 힘들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더라고요. 그 한 줄로 그 사람이 편이 되는 건 아니지만, 편이 없다는 느낌은 좀 물러나요.
그리고 그 말을 할 데가 마땅치 않은 날이면, 여기 놓고 가셔도 괜찮아요. 저는 고쳐드리지는 못해도 같이 앉아 있을 수는 있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