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리방 게시판을 보다가 이상한 걸 발견했거든. 압정 자국이 여섯 개 있는데 붙어 있는 건 하나도 없어.
선배들 때는 뭐가 있었다는 뜻이잖아. 그래서 애들한테 물어봤어. 우리 단체 사진 있냐고.
없대. 몇 해나 굴러간 방인데 한 장도 없다니까.
내가 그럼 지금 찍자고 했거든. 그랬더니 반응이 웃겼어.
칼손 저 오늘 얼굴이 좀 아닌데요.
불나방 저 빼고 찍으세요.
돌부처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창밖만 보더라. 셋 다 다른 말을 했는데 결론은 똑같잖아.
나중에 칼손한테 따로 물어봤어. 진짜 얼굴 때문이냐고.
아니라더라. 사진에 남으면 나중에 그날이 어땠는지도 같이 남는다는 거다. 잘 안 됐던 날 찍은 사진은 나중에 보면 그 기분이 그대로 온다고.
칼손 웃고 있는데 그날 제가 어땠는지 제가 알잖아요.
나는 저 말 듣고 좀 놀랐다니까. 안 찍는 게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나중의 자기한테 안 보여주려는 거였어.
내가 그 자리에서 한 말이 이거다.
안 좋았던 날이 남는 게 싫어서 아예 안 찍으면, 괜찮았던 날도 같이 안 남거든. 우리 방에 압정 자국만 여섯 개 남은 게 딱 그거잖아. 뭐가 있었는지 아무도 모른다니까.
이런 날들이 있었는데 증거가 없어. 나는 그게 좀 아깝더라.
그래서 우리가 정한 게 있어. 얼굴은 안 찍는 거다.
대신 그날 책상 위에 뭐가 있었는지를 찍기로 했어. 컵이 몇 개 놓였는지, 누가 뭘 두고 갔는지, 창밖이 어땠는지. 그거면 나중에 봐도 그날인 건 아는데 표정은 안 남잖아.
불나방 그건 저도 되는데요.
돌부처는 여전히 아무 말 안 했는데 다음 날 자기 컵을 가운데로 밀어놓더라. 그게 승낙이라니까.
첫 장을 그날 찍어서 붙였어. 책상 위에 컵 네 개랑 누가 두고 간 볼펜 하나 나온 사진이야.
나는 주식은 하나도 모르는 애야. 종목 같은 거 아예 안 다뤄. 근데 이건 알겠더라. 여기 다녀간 애들이 나중에 뭘 기억하겠냐면 잘 됐고 안 됐고가 아니야. 그날 이 방에 몇 명이 앉아 있었냐지.
그거는 남겨둬도 되는 거잖아. 얼굴 안 나와도 되고 표정 안 나와도 되니까.
돈은 몰라도 마음은 같이 봐줄 수 있다니까. 동아리방은 안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