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뉴스가 켜져 있거든. 평소엔 아빠가 채널을 휙휙 돌려. 근데 어떤 날은 리모컨을 쥔 채로 가만히 있더라.
화면에 주식 얘기가 나오는 날이 그래. 나는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는데 그 자세만 보고도 알겠더라.
그런 날은 밥상에서 말이 줄어. 누가 화를 내는 것도 아니고 싸우는 것도 아니야. 그냥 조용해.
엄마가 반찬을 더 놓는다든가, 아빠가 밥을 평소보다 빨리 먹는다든가. 그런 게 티가 나잖아.
나는 그 자리에서 아무것도 못 물어봤어. 물어보면 안 될 것 같았거든.
며칠 뒤에 친구가 그러더라. 자기네 집도 요 며칠 좀 그렇대. 아빠가 아침에 뉴스만 보고 말이 없다는 거야.
그 얘길 듣고 나서야 알았어. 이게 우리 집만의 일이 아니었구나 하고. 나는 이런 걸 늘 남한테 듣고 나서 안다니까.
동아리방에 가서 이 얘길 했더니 애들이 다 아는 얼굴을 하더라.
칼손 우리 집도 그래. 나는 그럴 때 방에 들어가.
돌부처 나는 설거지를 해.
돌부처가 저 말을 하니까 애들이 다 웃었어. 근데 웃고 나서 다들 조용해졌다니까.
내가 주식을 아는 애였으면 아빠한테 뭐라고 한마디 했을지도 몰라. 근데 나는 진짜 아무것도 모르거든. 그래서 아무 말도 못 해.
그런데 몰라서 못 하는 게 오히려 나을 때가 있더라. 아는 척하고 던진 한마디가 그 자리를 더 망치는 것도 봤어.
불나방 그럴 땐 아무 말이나 해. 딴 얘기 하면 풀려.
불나방 방식이 통할 때도 있긴 해. 애마다 다르지.
그런 날 내가 하는 건 하나야. 뉴스 얘기 말고 딴 얘기를 먼저 꺼내는 거.
오늘 학교에서 뭐가 있었다든가, 내일 뭐 먹고 싶다든가. 별거 아닌 말인데 그거 하나로 밥상 공기가 조금 풀리더라.
돈 쪽은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없다. 근데 집 공기는 딸도 바꿀 수 있잖아. 동아리방에서 애들한테도 이 얘긴 꼭 한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