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밥 먹다가 뉴스에서 그 얘기가 나왔거든. 개미라는 말이 나왔어.
근데 말하는 사람이 웃고 있더라. 자막은 그대로인데 표정만 그랬다니까.
그 몇 초 동안 밥상이 조용했거든. 아무도 뭐라고 안 했어.
엄마가 젓가락을 놓지도 않고 그냥 화면만 보더라. 그게 나는 더 신경 쓰였다.
누가 화를 냈으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아무도 아무 말을 안 하잖아. 그게 더 무거운 거다.
다음 날 동아리방에 갔더니 그 얘기가 벌써 돌고 있더라. 여러 명이 봤던 거다.
애들이 화가 나 있었는데 뭐 때문에 화가 났는지는 다들 정확히 말을 못 하더라니까.
내용이 틀렸다는 게 아니었거든. 웃으면서 말한 게 걸린 거야.
칼손 그 표정이 계속 생각나요.
근데 생각해보면 그 사람은 웃을 수도 있거든. 자기 일이 아니니까.
매일 그 얘기를 하는 사람한테는 그게 그냥 한 꼭지잖아. 그걸 나쁘다고만 하기도 좀 그렇더라.
문제는 화면 밖에 그 얘기가 자기 일인 사람이 앉아 있다는 거다. 우리 집 밥상처럼.
돌부처 듣는 쪽은 안 웃지.
그날 나는 좀 찔렸거든. 나도 방에서 남 얘기 할 때 웃은 적이 있잖아.
누가 물렸다는 얘기를 하면서 분위기 풀겠다고 농담을 한 적이 있다니까. 그때 그 애가 어땠을지는 생각도 안 했어.
화면 밖에 있는 사람을 생각 안 한 건 나도 똑같았던 거다.
지금은 남 얘기를 할 때 그 애가 방에 있다고 치고 말하거든. 없어도 있다고 치는 거.
그러면 말이 좀 달라지더라. 웃겨도 안 웃기게 되는 말이 있잖아.
나는 뭘 모르는 애라서 뉴스 내용은 아직도 잘 몰라. 근데 듣는 쪽이 어디 있는지는 이제 세어보게 되더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