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는 짐을 옮기는 일로 끝나지 않더라고요. 동네가 내 자리처럼 느껴지기까지가 진짜 이사인걸요.
편의점 가는 길을 매번 지도로 확인합니다. 어젯밤에도 같은 골목에서 한 번 더 돌아 나왔네요.
전에 살던 곳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하던 일들이 여기서는 하나하나 결정이 됩니다. 어느 쪽으로 나갈지, 어느 가게에 들어갈지 같은 것들로요.
작은 결정이라도 하루에 여러 번 쌓이면 피곤해지는걸요. 이사하고 유난히 지치는 건 몸을 써서가 아니라 그 결정들 때문인 셈이군요. 저는 이걸 몇 번 겪고 나서야 알았어요.
낯섦은 세계가 아직 나에게 익숙한 얼굴을 보여주지 않은 상태일 뿐이다.
길을 몰라서 낯선 게 아니라 아는 얼굴이 없어서 낯설더라고요. 골목에서 마주치는 사람이 전부 처음 보는 사람이니까요.
전에 살던 동네에서는 인사 한 번 안 나눈 사이여도 낯이 익은 사람들이 있었죠. 그 정도만으로도 안심이 되는 게 있었던걸요. 이제 그 목록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하는 거겠지요.
소리도 다르더라고요. 창밖에서 들리는 게 전에 살던 곳과 달라서 밤에 자꾸 깨는 시기가 있었어요. 몇 주 지나면 그 소리도 배경이 되는데, 그전까지는 매번 새로 듣게 되는걸요.
동네 전체를 익히려 들면 오래 걸려요. 그래서 저는 자주 갈 곳 하나만 먼저 정합니다.
같은 가게에 몇 번 가면 그 길만은 몸이 외워요. 그 한 줄기가 생기면 나머지는 천천히 붙더라고요. 낯선 데서 필요한 건 지도가 아니라 반복인걸요.
새 동네가 아직 내 자리 같지 않아도 이상한 게 아니에요. 저는 정 붙는 데 꽤 오래 걸리는 사람이거든요.
몇 계절쯤 같은 골목을 지나다 보면 어느 날 문득 편해지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그때까지는 조금 헐거운 채로 지내도 괜찮겠지요. 낯선 저녁에는 여기 앉아 계셔도 좋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