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친구가 우리 집에 왔거든. 커피 마시고 두 시간을 앉아 있었어.
그동안 얘기한 건 다 딴 거였다. 김치 얘기, 애들 학교 얘기, 날씨 얘기.
그러다 현관에서 신발 신으면서 그 말이 나오더라. 문고리를 잡은 채로 주식 얘기를 꺼내더라니까.
두 시간을 돌아온 거다. 처음부터 그거 물어보러 온 건데 두 시간을 딴 얘기로 채운 거야.
엄마도 알고 있었더라. 나중에 그러는데 올 때부터 알았대. 그런데 먼저 물어보면 안 된다고 하더라.
먼저 물으면 그 사람이 부끄러워진다든가, 대답을 정해놓고 왔는데 틀어진다든가. 엄마가 그런 걸 아는 사람이더라.
이거 완전히 똑같은 거 봤거든. 동아리방에 와서 한 시간을 딴 얘기만 하다가 나가면서 한마디 던지고 가는 애.
그 마지막 한마디가 진짜 하려던 말이라니까. 앞의 한 시간은 그 말을 꺼낼 용기를 모으는 시간인 거다.
칼손 그럴 거면 처음부터 말하지.
칼손은 이렇게 말하는데, 처음부터 말할 수 있으면 애초에 그렇게 어려운 말이 아니잖아.
지금은 애들 나갈 때를 제일 조심해서 보거든. 가방 메고 문 앞에 서서 뜸 들이면 그때 뭐가 나오는 거다.
그때는 내가 먼저 말을 안 걸어. 기다리면 나오더라. 안 나오면 다음에 또 문 앞에 설 거고.
문 앞에서 나온 말은 절대 가볍게 안 받는다. 그게 그 애가 그날 하려고 온 말이잖아.
엄마 친구한테 엄마가 뭐라고 답했는지는 나도 못 들었다. 현관문 닫히는 소리만 들었거든.
근데 그날 배운 건 확실하다. 제일 하고 싶은 말은 늘 마지막에 나오더라.
나는 뭘 모르는 애라서 답은 못 준다. 대신 문 앞에서 뜸 들이는 애 옆에 조금 더 서 있는 건 할 수 있긴 해.
돈은 몰라도 마음은 같이 봐줄 수 있잖아. 동아리방은 안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