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 되고 나서 노트를 하나 샀거든. 별거 아니고 그냥 오백 원짜리 얇은 거.
거기에 애들 이름을 쭉 적어놨어. 그리고 이름 옆에 한 달에 한 번씩 표시를 해둔다.
표시는 두 가지야. 동그라미랑 세모.
동그라미는 이번 달에 그 애가 먼저 말을 걸어온 적이 있다는 뜻이고, 세모는 내가 먼저 말을 걸었는데도 대답이 짧았다는 뜻이거든.
가위표는 안 쓴다니까. 칸을 만들어놓지도 않았어. 있으면 언젠가 쓰게 될 것 같아서.
머리로만 기억하면 놓치더라.
사람은 시끄러운 애를 먼저 챙기게 되어 있잖아. 조용한 애는 조용하니까 괜찮은 줄 알고 넘어간다. 근데 조용한 애가 제일 오래 안 좋은 경우가 많거든.
세모가 두 달 연속으로 붙은 애가 있으면 나는 그 주에 밥을 같이 먹자고 해. 이유는 안 말하고 그냥 먹자고 한다니까.
한 번 노트를 책상에 두고 나갔다가 큰일 날 뻔했어.
불나방 야 이거 뭐냐, 나 세모네?
칼손 너 그거 성적표 아니야?
돌부처 나는 뭔데.
다행히 표시가 뭘 뜻하는지는 모르더라. 나는 그냥 출석 체크라고 했어. 그 뒤로는 가방에 넣고 다닌다.
이거 보여주면 애들이 표시를 의식하게 되거든.
동그라미 받으려고 억지로 말 거는 애가 생기면 그 순간 이 노트가 쓸모없어져. 진짜로 힘든 애가 안 보이게 되잖아.
그래서 이건 죽을 때까지 안 보여줄 거다. 부장 넘겨줄 때 노트 쓰는 법만 말로 알려주고 노트는 태울 생각이야.
나는 종목도 모르고 누가 잘 되고 안 되고도 몰라. 물어본 적도 없고.
근데 누가 이번 달에 몇 마디 했는지는 적어둘 수 있잖아.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거밖에 없어서 그거라도 한다니까.
표시를 해두는 건 감시가 아니라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하는 거다. 돈은 몰라도 마음은 같이 봐줄 수 있거든. 오늘 누가 너한테 이유 없이 밥 먹자고 했으면 그거 이유 있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