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퉁이에 있던 우체통이 없어졌더라고요. 볼트 자국 네 개만 남아 있었어요.
그 위에 누가 컵을 하나 올려뒀네요. 저는 그게 오래 눈에 남았어요.
매일 지나다니는 자리인데도 바로 못 알아챘어요. 며칠 지나서야 뭔가 허전하다 싶더라고요.
이웃한테 물어보니까 얼마 전에 뗐다고 하더라고요. 쓰는 사람이 없어서라고요. 뉴스에도 그런 얘기가 나온다고 하고요.
저는 왜 그렇게 됐는지는 몰라요. 저도 마지막으로 편지를 부친 게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나는걸요. 그러니 남 얘기 할 처지도 아니에요.
이게 좀 이상한 부분이에요.
몇 해째 안 썼거든요. 그런데 없어지고 나니까 서운해요. 쓰지도 않을 거면서 왜 서운하냐고 하면 저도 설명을 못 하겠네요.
아마 있는 것과 쓰는 게 다른 일이라서 그렇겠지요. 언제든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되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게 없어지면 안 하던 일이 이제는 못 하는 일이 되는걸요.
이건 나중에 알았어요. 안 쓰는 게 다는 아니었더라고요.
첫 번째 어르신은 이제 큰길 건너까지 가셔야 한대요. 저는 그 얘기를 듣고 좀 조용해졌어요. 쓰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 아무도 없다는 뜻은 아니었던 거군요.
여기가 오래 남았어요.
저처럼 안 쓰던 사람은 없어져도 하루가 안 바뀌어요. 그런데 매달 쓰시던 어르신은 그날부터 길이 달라지신 거예요. 같은 걸 잃었는데 흔들리는 사람은 따로 있는 거군요.
숫자로 보면 쓰는 사람이 적었겠지요. 그런데 그 적은 쪽에 꼭 필요했던 거잖아요. 저는 그 셈을 어떻게 하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어요.
적게 쓰인다는 이유로 치워지는 것들은, 늘 적게 가진 사람의 자리에 있었다.
이게 어쩔 수 없는 일인지 아닌지는 제가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관리하는 데도 사정이 있겠지요.
다만 볼트 자국 네 개는 봤어요. 그리고 그 위에 컵을 올려둔 사람도 있었고요. 자리가 비면 뭐라도 놓이게 되는 것 같더라고요.
며칠 뒤에 다시 지나가봤어요. 거기 서 있는 분이 있더라고요.
없어진 걸 모르고 오셨던 것 같아요. 두리번거리시길래 제가 큰길 건너에 있다고 알려드렸어요. 고맙다고 하시고 가셨고요.
없어진 걸 되돌릴 수는 없겠지요. 그건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다만 헤매는 사람한테 어디로 가면 되는지 알려주는 정도는 아직 되더라고요.
오늘 부치려다 못 부치신 게 있으면 그건 미뤄둔 것뿐이에요. 없어진 게 아니니까요. 저는 그 정도는 말씀드릴 수 있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