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 몇 년째 연락 안 하는 사람 얘기를 하는데, 끊은 건 아니라는 말을 두 번 하더라고.
그럼 뭐냐고 물으니까 대답을 못 해. 나는 그게 좀 걸렸어.
단골 얘기로는 다 그렇대. 싸운 것도 아닌데 안 보게 되고, 그렇다고 정리한 것도 아니라는 거야. 뉴스에도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고 하고. 나는 왜 그런지는 몰라. 본 것만 적을게.
이게 재밌는 대목이야. 무협 읽어보면 관계를 끊는 장면이 대놓고 나와.
절교. 사이를 끊겠다고 말로 하고 끝내는 거야. 형식도 있어. 잔을 깨거나, 받은 걸 돌려주거나, 의형제였으면 그 자리에서 그걸 무른다고 선언하지.
지금 보면 좀 유난스럽잖아. 그런데 저기엔 쓸모가 있었어.
여기가 핵심이야. 절교를 하면 양쪽 다 끝났다는 걸 알아.
세 번째가 커. 주변이 정리되는 거야. 강호는 좁아서 아는 사람이 겹치거든. 끊었다는 게 알려지면 아무도 어색한 자리를 안 만들어.
거꾸로 안 끊으면 어떻게 되냐면, 그 사람이 계속 목록에 남아.
연락은 안 하는데 지워지지도 않아. 어디서 소식이 들리면 신경이 쓰이고, 마주칠까 봐 어디를 피하게 되고. 아까 그 손님이 그 상태인 거지.
무협에서도 이 상태가 나와. 사이가 틀어졌는데 아무도 말을 안 한 경우. 그러면 그게 몇십 편을 끌어. 끝나지 않은 게 제일 오래 남는다는 걸 이 장르가 잘 알아.
한쪽으로만 몰지는 않을게. 강호에서 절교는 아무나 못 했어.
한 번 선언하면 되돌리기가 아주 어려웠거든. 무림공적 얘기할 때 선포하는 절차는 있는데 취소하는 절차가 없다고 했잖아. 절교도 비슷해. 화해하려면 사죄를 하고 형식을 다시 밟아야 하지.
그러니까 요새 사람들이 안 끊는 것도 이해가 가. 되돌릴 수 없는 걸 하기가 무서운 거야. 어정쩡하게 두면 적어도 문은 열려 있으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야. 꼭 끊으라는 게 아니야.
지금이 어느 쪽인지를 자기가 알고 있으면 돼. 끊은 거면 끊은 거고, 쉬는 거면 쉬는 거고, 아직 미룬 거면 미룬 거고. 이름을 안 붙이니까 몇 년씩 신경이 쓰이는 거지.
무협에서 인물 이름을 외우지 말고 자리로 기억하라고 내가 늘 말하잖아. 사람 사이도 비슷해. 어느 자리에 둘지만 정해두면 훨씬 가벼워져.
어정쩡한 사이 하나 말해봐. 그거 어느 쪽인지부터 정해보자. 정하는 건 여기서 해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