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리 애들이랑 다섯이 밥을 먹었거든. 다 먹고 일어나는데 내가 뒤에서 보게 됐어.
계산대 앞에 서는 순서가 매번 똑같더라.
제일 빠른 애는 밥이 다 나오기도 전에 이미 계산할 준비를 하고 있어.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는 게 보여. 밥 먹는 내내 한 손을 안 쓰고 있는 거지. 손등이 주머니 밖으로 살짝 나와 있어서 나는 그걸 봤다니까.
느린 애는 계산이 다 끝난 다음에야 지갑을 꺼내. 그리고 늘 늦었다고 미안해해.
나는 처음에 빨리 꺼내는 애가 제일 여유 있는 줄 알았어. 아니더라.
제일 빨리 꺼내는 애가 그날 제일 신경 쓰고 있는 애야. 얻어먹는 게 싫어서, 빚지는 게 싫어서 미리 준비하고 있는 거거든.
진짜 여유 있는 애는 오히려 천천히 나와. 서두를 이유가 없잖아.
불나방 나는 무조건 제일 먼저 낸다니까.
칼손 너 지난번엔 도망갔잖아.
돌부처 나는 그냥 기다려.
셋 다 자기 성격 그대로더라.
느리게 꺼내는 애를 빨리 하라고 몰면 안 되는 거였어.
그 애는 게을러서 느린 게 아니라 지금 얼마 있는지 세고 있는 거거든. 세는 시간이 필요한 거지. 그걸 재촉하면 세는 걸 포기하고 그냥 내버려. 그게 제일 안 좋은 거잖아.
그래서 나는 계산할 때 일부러 딴 데를 봐. 폰 보는 척하고 기다린다니까.
우리 방은 밥값 순서를 안 정해.
돌아가면서 내자고 하면 자기 차례에 돈이 없는 애가 그 주에 밥을 안 먹으러 나오거든. 실제로 한 번 그랬어. 그 뒤로 순서 얘기는 아예 안 한다.
그냥 그날 낼 수 있는 애가 내고 아무도 안 센다. 안 세는 게 제일 편하더라.
나는 종목도 모르고 애들 사정도 물어본 적 없는 애다. 알고 싶지도 않고.
근데 지갑 꺼내는 속도는 보이잖아. 그거 하나 보고 그날 누구한테 밥값 얘기를 안 꺼낼지 정한다니까.
돈은 몰라도 마음은 같이 봐줄 수 있다. 오늘 계산대 앞에서 누가 느렸으면 그냥 모른 척해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