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간다던 이웃이 복도에서 상자 개수를 세다 말고 창밖을 한참 보고 있었어요. 좋은 데로 가시냐고 물었더니 웃으면서 그냥 조금 먼 데라고만 하더라고요. 저는 더 묻지 않았어요.
모임에서 집 얘기가 나오면 분위기가 잠깐 내려앉는 걸 여러 번 봤어요. 누가 화를 내는 것도 아닌데 말수가 줄어요. 각자 사정이 다 다르고, 그 다름이 그 자리에서 제일 또렷하게 드러나서겠지요.
저는 뉴스에서 오가는 큰 얘기를 잘 아는 사람이 아니에요. 제가 본 건 상자를 세다 멈춘 손과, 조금 먼 데라는 그 한마디뿐인걸요.
어디 사느냐는 원래 위치 얘기인데, 어느 순간 사람 얘기처럼 들리더라고요. 그래서 묻는 쪽도 조심스럽고 답하는 쪽도 짧아져요. 안부가 아니라 확인처럼 느껴지니까요.
우리가 겪는 불행의 절반은 남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를 신경 쓰는 데서 온다.
집 얘기가 유독 무거운 것도 그 대목이겠지요. 불편한 건 좁은 방이 아니라 그 방이 어떻게 읽힐지에 대한 마음일 때가 많은걸요.
짐을 옮기는 건 며칠이면 끝나는데, 익숙한 골목과 단골 가게와 아침 소리를 옮기는 건 그렇지 않더라고요. 이웃이 창밖을 보던 그 몇 초가 아마 그 대목이었을 거예요.
그러니 이사 앞두고 마음이 뒤숭숭한 게 이상한 일이 아니에요. 짐만 세면 되는 일이었으면 그렇게 오래 서 있지 않았겠지요.
저는 커피값과 월세로 사는 사람이라 큰 그림은 잘 안 보여요. 제가 아는 건 이번 겨울에 창틈으로 바람이 들어온다는 것 정도예요. 그보다 큰 것들은 제 손에 있지 않은걸요.
집 얘기에 마음이 굳으셨던 날이라면, 그 자리에서 자신을 채점하지는 않으셨으면 해요. 어디에 사는지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주지는 않더라고요. 오늘 앉아 있는 자리를 미워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 밤이 조금 가벼워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