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가까워지면 안부의 내용이 바뀌더라고요. 잘 지내냐 대신 표는 구했냐가 먼저 나오네요.
가게에서 옆자리 손님이 못 구했다고 하시는데 목소리가 오히려 좀 풀려 있었어요. 저는 그 어조가 계속 생각났습니다.
표를 못 구했다는 건 곤란한 소식일 텐데 말투는 그렇지 않았어요. 어쩔 수 없었다는 쪽에 더 가까웠죠.
가고 싶지 않은 마음과 가야 한다는 마음이 같이 있을 때, 밖에서 온 이유 하나가 사람을 꽤 편하게 해주는걸요. 내가 안 가는 게 아니라 못 가는 게 되니까요. 그 차이가 생각보다 크더라고요.
우리는 스스로 정하는 것보다, 정해져버린 것 앞에서 더 편안해지곤 한다.
물론 정말 아쉬운 사람도 있어요. 뉴스에서 그 얘기가 나올 때마다 전화기를 드는 이웃도 봤고요.
일 년에 며칠 보는 가족을 못 보게 되는 사람에게는 같은 소식이 전혀 다르게 도착합니다. 한 자리에서 오가는 짧은 대화에 이 두 마음이 같이 앉아 있는 셈이군요. 그래서 다들 길게 안 묻는 것 같기도 하네요.
어느 쪽이 맞다고 말할 생각은 없어요. 가족 얘기는 남이 옳고 그름을 말할 자리가 아니니까요.
다만 저는 오래 앉아 있는 걸 잘하는 사람이라 이런 건 압니다. 가기 싫은 마음이 든다고 해서 그 사람이 못된 게 아니라는 것요. 대개는 지쳐 있어서 그렇더라고요. 지친 사람은 어디로도 가고 싶지 않은 법이겠지요.
떠나는 사람도 남는 사람도 이맘때는 조금 무겁습니다. 저는 그 무거움을 없애 드릴 수는 없어요.
다만 그게 유난한 게 아니라는 말씀은 드릴 수 있겠지요. 표를 구하고도 마음이 안 놓이는 밤이라면, 창가에 앉아 그 얘기를 좀 하셔도 괜찮은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