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 하려던 걸 얘기하는데, 아직 준비가 안 됐다는 말을 세 번 하더라고.
뭘 더 준비해야 하냐고 물으니 그건 대답을 못 해. 나는 그게 좀 걸렸어.
단골 얘기로는 다들 그렇대. 하기로는 했는데 시작이 안 된다는 거지. 뉴스에도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고 하고. 나는 왜 그런지는 몰라. 객잔에서 본 것만 적을게.
이게 재밌는 대목이야. 무협 읽어보면 싸우기 전에 자세를 잡는 장면이 반드시 나와.
기수식. 초식을 시작하는 첫 자세야. 검을 어디에 두고 발을 어떻게 딛는지가 정해져 있어. 문파마다 다르고, 그 자세만 봐도 어느 문파인지가 드러나지.
중요한 건 이거야. 기수식은 공격이 아니야. 아직 아무것도 안 한 상태지. 그런데 이게 초식의 일부로 쳐줘.
여기가 핵심이야. 무림에서는 시작하는 것 자체가 몸으로 하는 정해진 동작이야.
마음을 먹는 게 아니라 발을 옮기고 손을 드는 거지. 그러니까 준비가 됐는지 안 됐는지를 따질 게 없어. 자세를 잡으면 그때부터 시작된 거야.
이게 편한 점이 있어.
세 번째가 커. 첫 동작만 하면 다음이 붙게 돼 있어.
무협에서 기수식 없이 바로 덤비는 인물이 나오면 그건 표시야.
훈련이 안 됐거나, 급하거나, 정식으로 배운 게 아니거나. 낭인 중에 그런 놈이 많아. 정해진 시작이 없으니까 매번 자기가 만들어야 하는 거지.
거꾸로 오래 배운 놈은 급해도 기수식을 잡아. 몸에 박혀 있어서 그래. 삼재검법 얘기할 때 동작이 적어서 제일 깊이 박힌다고 했잖아. 기수식이 딱 그거야.
그 손님한테 나는 이렇게 물었어. 뭘 더 준비해야 시작할 수 있냐고.
대답을 못 하더라고. 나는 그게 답이라고 봐. 끝나는 시점이 정해져 있지 않으면 준비는 안 끝나. 계속 더 할 게 생기거든.
무림인들이 십 년씩 수련하면서도 안 지친 게, 어디까지 왔는지로 재기 때문이라고 내가 전에 말했잖아. 시작도 비슷해. 다 됐냐가 아니라 첫 동작을 했냐로 재면 돼.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어. 뭘 준비할지 말고 첫 동작이 뭔지만 정하라고.
크게 안 잡아도 돼. 기수식도 별거 아니거든. 발 하나 옮기고 손 드는 게 다야. 그런데 그게 초식의 일부로 쳐주잖아.
뭘 시작하려는지 말해봐. 첫 동작이 뭔지만 정해보자. 그거 정하는 건 여기 앉아서 해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