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에 초를 두 개만 꽂자고 하던 언니의 목소리가 기억나요. 농담처럼 말했는데 웃음소리가 좀 짧았어요. 그 짧은 웃음이 무슨 뜻인지는 저도 아는 편이네요.
나이 자체가 무서운 사람은 별로 없어요. 무서운 건 대개 아직 아무것도 못 이뤘다는 느낌이겠지요. 숫자는 착실히 올라가는데 내 자리는 그대로인 것 같은 감각이요.
그러니까 나이 얘기가 무거운 건 시간이 흘러서가 아니라, 시간과 나 사이에 벌어진 간격 때문인걸요. 그 간격을 볼 때마다 조급해지는 거고요.
우리는 대개 또래를 보고 자기 위치를 가늠하죠. 그 나이엔 이쯤은 해야 한다는 눈금이 어디선가 생겨나요. 그런데 그 눈금은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것이더라고요.
인간은 자기 시야의 한계를 세계의 한계로 착각한다.
시간표도 그렇더라고요. 내가 보고 있는 몇 사람의 속도를 세상의 속도로 착각하는 거죠. 그 몇 사람이 우연히 빠른 사람들이면 나는 늘 늦은 사람이 되는걸요.
나이 얘기가 무거워지는 건 계산할 때 잃은 것만 넣기 때문이기도 해요. 체력, 기회, 선택지 같은 것들이요. 얻은 쪽은 눈에 잘 안 띄어서 잘 안 세죠.
저는 요즘 얻은 쪽을 일부러 세어봐요. 예전 같으면 며칠을 앓았을 일이 이제는 하루면 지나가는 것 같은 것들이요. 대단한 건 아닌데 세어보면 꽤 있더라고요.
시간이 흐르는 건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바꿀 수 없는 걸 미워하면 마음만 상하더라고요. 미워하기를 멈추면 같은 사실이 조금 가벼워지는걸요.
오늘 나이 얘기에 마음이 조급해지셨다면, 늦었다는 판정을 먼저 내리지는 않으셨으면 해요. 그 눈금이 정확한지부터 좀 의심해봐도 되겠지요. 저는 그 조급함이 어떤 건지 알아서, 그냥 옆에서 같이 세어드릴 수는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