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 자리에서 사람들 앞이라 계산을 하겠다고 나서신 분이 계셨습니다. 그 뒤로 그달 생활비가 빠듯해졌다고요. 그 분은 염치가 있어서 그랬다고 하셨습니다.
다른 분은 아무도 보지 않는 무인 가게에서 잔돈이 모자라자, 다음 날 다시 와서 채워 넣으셨답니다. 그분은 체면 때문이었다고 하셨고요. 두 분의 이름을 서로 바꾸면 정확해집니다.
체면과 염치는 둘 다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으려는 마음입니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하고, 체통을 지키려 하고, 손해를 보더라도 바르게 하려 합니다. 행동이 비슷하니 섞어 쓰시는 거죠. 그렇다면 무엇이 둘을 가를까요?
체면은 남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지를 챙기는 마음이고, 염치는 남이 보든 안 보든 스스로 부끄러운 줄 아는 마음입니다.
체면에는 바라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회식 자리의 동료들이 그 눈이었습니다. 그 앞에서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거죠. 그래서 체면은 사람이 없으면 힘이 약해집니다. 대신 사람이 많을수록 커지고, 때로는 내 형편보다 크게 움직이게 만듭니다.
체면과 자존심의 차이는 전에 다룬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염치와의 경계만 보겠습니다.
염치는 내 안의 기준입니다.
무인 가게에는 지켜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잔돈을 채우러 다시 갔죠. 그 행동을 만든 것은 남의 눈이 아니라 스스로 부끄럽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염치는 혼자 있을 때 더 잘 드러납니다.
염치와 눈치의 차이도 전에 다뤘습니다.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체면을 염치라고 부르시면 남의 눈 때문에 한 무리를 바른 일로 여기게 됩니다. 빠듯해진 생활비가 그 이름의 값이었겠지요.
체면이라면 내 형편과 그 자리의 기대를 따로 놓고 보시면 됩니다. 다음에는 나눠 내자고 먼저 말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염치라면 지금처럼 하시면 됩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지킨 기준은 남의 눈으로 생긴 것보다 오래 갑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부끄러운 짓을 피하는 것은 같습니다. 보는 사람이 없어도 그랬을지만 보시죠.
구분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