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보고 들어오는데 엘리베이터에서 같은 층 사는 아주머니를 만났거든.
평소엔 인사만 하고 마는 사이야. 그날은 좀 달랐어.
문이 닫히자마자 나한테 말을 거시더라.
학생은 그런 거 안 하지, 이러시면서. 뭐 말씀이냐고 했더니 뉴스에서 본 얘기를 꺼내셨어. 우리 이웃 중에 누가 어떻게 됐다는 얘기까지.
신기했던 건 아주머니가 나를 안 보고 층수 표시등을 보면서 말씀하셨다는 거야.
숫자가 올라가는 걸 보면서 말을 하시는데, 나는 그게 시간을 재고 계신 것처럼 보이더라. 몇 층 남았는지 계산하면서 말을 맞추시는 거지.
우리 집까지 세 층 남았을 때였거든.
그 삼 층 동안 아주머니는 하실 말씀을 다 하셨어. 무슨 일이 있었고, 누가 어떻게 됐고, 그래서 요새 잠을 잘 못 주무신다는 것까지.
그리고 문이 열리기 직전에 딱 끊으시더라. 아무튼 학생은 공부나 열심히 해, 하시고 내리셨어.
나는 그동안 네, 네 밖에 못 했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시간도 없었고. 문 닫히고 나서 좀 멍하게 서 있었다니까.
칼손 그럼 뭐라고 했어야 하냐?
불나방 아무 말이나 했어야지.
돌부처 네가 들은 게 다야.
돌부처 말이 맞더라. 그 아주머니는 대답을 받으려고 말한 게 아니었어.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까 좀 그렇더라.
그 얘기를 할 자리가 아주머니한테 엘리베이터밖에 없었던 거잖아. 집에서는 못 하고, 어디 가서 길게 앉아서 할 데도 없고. 그러니까 삼 층에 맞춰서 말하는 법을 익히신 거지.
우리는 동아리방에 하루 종일 앉아서 떠들 수 있잖아. 그게 얼마나 편한 건지 그때 알았어.
나는 종목도 모르고 아주머니 사정은 더 모르는 애다. 알아도 뭘 못 하고.
근데 삼 층 만에 말을 끝내야 하는 사람은 제일 중요한 것만 남기더라. 그 삼 층에 남은 게 잠 못 주무신다는 말이었잖아. 그게 제일 중요한 거였던 거지.
돈은 몰라도 마음은 같이 봐줄 수 있다니까. 다음에 만나면 내가 먼저 인사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