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먹고 싶냐는 물음에 아무거나라고 세 번 답하고 결국 아무것도 고르지 못한 저녁이 있었어요. 배가 안 고픈 건 아니었어요. 고르는 일 자체가 안 되던 날이었더라고요.
하고 싶은 게 없다는 말은 대개 정확한 말이 아니에요. 바람이 사라진 게 아니라 잘 안 보이게 된 것에 가깝더라고요.
오래 미뤄둔 바람은 조용해져요. 어차피 안 될 것 같으면 마음이 먼저 말을 줄이거든요. 그렇게 몇 번 지나가면 무엇을 원했는지도 흐릿해지는걸요.
우리는 자주 좋아하는 것 대신 괜찮아 보이는 것을 골라요.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 나중에 도움이 될 것 같은 것들이요. 그런 선택이 쌓이면 내 취향은 쓸 일이 없어지죠.
원하는 것이 없다고 느낄 때, 우리는 대개 원해도 된다는 허락을 잃은 것이다.
이 말이 오래 남았어요. 실제로 하고 싶은 게 없다기보다, 그걸 원해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못하는 날이 많더라고요.
무엇을 원하냐는 물음은 대개 너무 크게 던져져요. 꿈이나 방향 같은 것들이요. 그렇게 크게 물으면 대답이 안 나오는 게 당연한걸요.
저는 요즘 작게 물어요. 오늘 저녁에 뭘 마시고 싶은지, 창문을 열고 싶은지 정도로요. 작은 대답이 몇 개 모이면 큰 대답의 방향이 조금 보이더라고요.
고르는 데도 힘이 들어요. 지친 날에 아무거나라고 말하는 건 게으름이 아니라 아껴 쓰는 방식이겠지요. 그런 날은 그냥 남이 골라주는 대로 먹어도 괜찮아요.
다만 그 상태가 오래 이어진다면, 무엇을 원하는지 몰라서가 아니라 오래 참아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원하는 걸 못 찾는 자신을 나무라지 마시고, 아주 작은 것부터 하나씩 골라보세요. 흐려진 것은 대개 천천히 다시 보이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