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며칠 이어지면 기분보다 집이 먼저 가라앉더라고요. 저는 그 순서를 좀 늦게 알았네요.
수건이 사흘째 안 말라 거실 한가운데 그대로 있어요. 그 앞을 지날 때마다 마음이 한 번씩 걸립니다.
눅눅한 날에는 집안일이 유난히 안 끝납니다. 빨래는 안 마르고 설거지는 잘 안 사라지죠.
끝이 나야 쉬는데 끝이 안 나니까 계속 미완인 상태로 지내게 되는걸요. 몸이 지친 게 아니라 안 끝난 목록이 사람을 눌러앉히는 셈이군요. 저는 그럴 때 유독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더라고요.
견디기 어려운 것은 큰 불행보다,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작은 성가심이다.
방에 오래 있으면 냄새가 조금 달라져요. 창을 못 여니 공기가 그대로 고여 있죠.
기분이 가라앉는 이유를 마음에서만 찾다 보면 답이 안 나오는데, 실은 방이 먼저 가라앉아 있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럴 때는 감정을 들여다보는 것보다 창을 잠깐 여는 편이 빠른걸요.
이런 날은 밖에 나가는 일도 다 미루게 돼요. 우산 챙기고 신발 젖는 걸 생각하면 약속 하나가 두 배로 무거워지니까요. 그렇게 며칠 아무도 안 만나면 집이 더 조용해지는걸요.
이런 날 집 전체를 치우려 들면 시작도 못 해요. 그래서 저는 딱 한 자리만 정합니다.
식탁 위만 비운다거나 수건만 다시 넌다거나 하는 정도로요. 하나가 정리되면 방 전체가 나아진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숨이 좀 트이더라고요. 눈에 보이는 자리 하나가 그 정도 값은 하는 셈이겠지요.
이 계절은 어차피 제 마음대로 안 됩니다. 눅눅한 걸 미워해봐야 습도가 내려가지도 않고요.
그래서 저는 요즘 그냥 비 오는 소리를 켜두고 지냅니다. 미워하기를 그만두니 조금은 가벼워지는걸요. 집이 무겁게 느껴지는 날이면, 여기 창가에 앉아 그치기를 같이 기다려도 좋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