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읽다가 이런 고수를 봤어. 술병을 들고 비틀거려.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같은데 칼이 날아오면 몸이 휘어서 피해.
그리고 넘어지는 척하면서 상대 다리를 걸어. 나는 처음에 이게 운인 줄 알았어.
운이 아니라 무공이었어. 취권이야.
취권은 무협이 지어낸 게 아니래. 중국 무술 갈래에 실제로 있다고 하더라. 술 취한 사람 몸짓을 흉내 낸 권법이지.
중요한 건 이거야. 취한 게 아니라 취한 척하는 거야. 몸은 흐느적거리는데 중심은 하나도 안 무너져. 그게 제일 어려운 부분이래.
여덟 신선 이름을 붙인 갈래도 있다고 들었어. 신선마다 취한 모습이 다르고, 그게 각각 초식이 되는 식이야.
취권이 노리는 건 상대 눈이야.
똑바로 선 상대는 다음 수가 읽혀. 근데 비틀거리는 상대는 어디로 넘어질지 몰라. 그러니까 칠 데를 못 정하는 거지.
그리고 넘어지는 동작 자체가 공격이 돼. 쓰러지면서 걸고, 기대면서 밀고, 휘청이면서 치고. 약해 보이는 동작 하나하나가 다 수야.
객잔 주인이라 취한 사람은 많이 봐. 진짜 취한 손님은 똑바로 걸으려고 애써. 벽을 짚고, 발을 하나씩 확인하면서.
근데 취권 대목 읽고 흉내 내는 손님은 반대야. 일부러 비틀거려. 그러다 진짜로 탁자에 부딪혀서 다들 웃었지.
그걸 보고 알았어. 취권이 어려운 이유가 이거야. 취한 사람은 비틀거리지 않으려 하고, 취권 고수는 비틀거리면서 안 넘어져. 방향이 정반대야.
무협에서 취권 쓰는 인물은 대개 늙은 술꾼이야. 객잔 구석에서 외상 술 마시는 거지 같은 노인. 다들 무시하는데 알고 보니 고수.
이 인물이 좋은 건 겉과 속이 다르다는 데 있어.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진다는 걸 몸으로 보여주는 거지.
비틀거리는데 이상하게 안 쓰러지는 인물 좋아하면 말해줘. 객잔 주인으로서 그런 놈들한테 정이 가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