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을 받고 알겠다고 답한 다음에 한숨을 쉬는 사람을 봤어요. 순서가 거꾸로였죠. 대개는 한숨이 먼저 나오고 대답이 나중일 텐데요. 대답이 마음보다 빠른 사람이 있더라고요.
거절을 못 하는 걸 성격 탓으로 돌리기 쉬워요. 그런데 대개는 그 자리에서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이 정해져 있더라고요. 아쉬운 쪽, 나중을 생각해야 하는 쪽은 말을 고르게 되니까요.
그러니 못 한 게 아니라 못 하게 되어 있는 자리였을 때가 많은걸요. 자신을 만만한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으셨으면 해요.
우리는 거절할 때 생길 상대의 실망을 먼저 계산해요. 그 실망이 미안해서 지금 힘든 쪽을 택하는 거죠. 마음의 빚을 미리 갚는 셈인걸요.
인간은 남에게 미움받는 고통을 실제보다 훨씬 크게 셈한다.
실제로 거절했을 때 벌어지는 일은 대개 상상보다 조용하더라고요. 상대는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고, 그 일은 그렇게 지나가요. 오래 남는 쪽은 떠안은 나뿐이겠지요.
계속 받아주면 그게 기본값이 돼요. 어느 날 한 번 못 하겠다고 하면 오히려 서운해하는 일까지 생기고요. 잘해준 값이 그렇게 돌아오면 마음에 원망이 앉더라고요.
원망은 관계를 조용히 갉아요. 그래서 다 받아주는 게 관계를 지키는 방법이 아닌걸요.
저는 요즘 대답을 조금 늦춰요. 확인해보고 알려드릴게요, 하고요. 그 몇 시간이 마음의 속도를 대답의 속도에 맞춰주더라고요.
그러고도 결국 떠안는 날이 있어요. 그럴 땐 적어도 내가 알고 떠안았다고 기억해둬요. 모르고 떠안은 일은 원망으로 남는데, 알고 떠안은 일은 그냥 한 일로 남더라고요. 오늘 또 알겠다고 답하셨다면, 그 대답을 한 자신을 나무라기보다 왜 그 자리가 그렇게 어려웠는지만 한번 봐두셔도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