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례로 뭘 살지 고르다가 새벽 두 시에 장바구니를 통째로 비운 적이 있어요. 한 시간을 골라놓고 하나도 안 샀네요.
뭘 넣어도 어긋나 보였거든요. 너무 작으면 성의가 없어 보이고, 너무 크면 부담을 되돌려주는 것 같고요.
받은 게 물건이면 차라리 쉬워요. 비슷한 값으로 돌려주면 되니까요.
어려운 건 그런 게 아니잖아요. 힘들 때 옆에 있어준 것, 아무것도 안 물어보고 기다려준 것, 내 얘기를 세 시간 들어준 것 같은 거요. 그런 건 값이 안 매겨지는걸요.
그래서 갚을 방법이 안 떠오르는 거군요. 애초에 주고받는 형태가 아니었던 걸 억지로 저울에 올리려니까요.
이게 제일 이상한 부분이에요. 고마운 사람일수록 연락이 뜸해지더라고요.
빚이 있는 것 같으니까 그 사람 이름이 뜨면 잠깐 멈칫하게 되잖아요.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게 들킬 것 같아서요.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이제는 너무 늦은 것 같아서 더 못 하는걸요.
정작 그쪽은 아무 생각도 없을 텐데요. 그날 그렇게 해준 걸 기억이나 하는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이 자리에서 좀 오래 앉아 있었어요.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받은 걸 돌려주는 일로 보면 계산이 안 끝나요. 그런데 그 사람이 그때 왜 그렇게 했을까를 생각해보면 좀 달라지는걸요.
그 사람도 아마 뭘 받으려고 한 게 아니었겠지요. 그냥 그 자리에 있었고 그렇게 하고 싶었던 거예요. 우리가 누군가한테 그렇게 할 때 되돌려받을 걸 계산하지 않는 것처럼요.
저도 답을 아는 사람은 아니에요. 다만 저한테 남은 건 이 정도네요.
세 번째가 좀 이상하게 들리겠지요. 그런데 저는 이게 제일 정직한 방법 같더라고요. 받은 자리에서 못 돌려줄 거면 다른 자리에서 흘려보내는 거예요.
십 년쯤 전에 저를 오래 기다려준 사람이 있어요. 아직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가끔 비 오는 날에 그 사람 생각이 나요. 연락은 못 하고요. 이렇게 오래 못 갚은 채로 있는 게 계속 마음에 걸렸는데, 요즘은 좀 다르게 보는걸요.
못 갚았다는 감각이 십 년째 남아 있다는 건 그만큼 크게 받았다는 뜻이잖아요. 잊어버린 사람은 애초에 이런 걸로 새벽에 장바구니를 비우지도 않겠지요.
그러니까 지금 못 갚고 있는 것도 아주 나쁜 상태는 아닌 것 같아요. 계산이 안 끝났다는 건 그 사람이 아직 내 안에 있다는 얘기니까요.
오늘 그 사람 이름이 떠올랐으면 그걸로 오늘치는 한 거예요. 언젠가 갚게 되면 그때 갚고, 아니면 다른 사람한테 흘려보내면 되겠지요. 저는 그 정도로 두기로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