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두고 싶은데 못 그만두는 상태가 제일 지치더라고요. 그만두는 것보다 그 사이에 오래 서 있는 게 힘든걸요.
양식을 내려받아 두고 파일 이름만 몇 번 바꿨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몇 달째 그러고 계시더라고요.
그만두면 다음이 정해져 있지 않죠. 그 불확실이 지금의 피로보다 크게 느껴지면 사람은 못 움직입니다.
그러니 우유부단해서 못 정하는 게 아니라 저울이 그렇게 기울어 있는 셈이겠지요. 저는 이걸 성격 문제로 몰아가고 싶지 않더라고요. 대개는 조건의 문제인걸요.
우리는 원하는 것을 고르는 게 아니라, 견딜 수 있는 쪽을 고른다.
그만두겠다고 마음먹은 뒤에도 매일 그 자리에 가야 합니다. 마음은 이미 반쯤 나와 있는데 몸은 그대로인걸요.
그 상태가 길어지면 일도 잘 안 되고 자책도 늘더라고요. 결정을 못 한 값을 매일 조금씩 치르는 셈이군요. 저는 그게 제일 아깝다고 생각했어요.
주위에서는 참으라거나 나오라거나 둘 중 하나를 말해줍니다. 다들 자기 경험으로 말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그분들이 내 사정을 다 아는 건 아닌걸요. 남는 사람의 이유도 나가는 사람의 이유도 각자 자기 자리에서만 정확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조언을 반쯤만 듣습니다.
당장 못 정하겠으면 저는 기준 하나만 적어둡니다. 이것까지 가면 그때는 나온다는 식으로요.
그러면 매일 고민하지 않아도 되더라고요. 판단을 미래로 미뤄두는 게 아니라 조건에 맡겨두는 셈이겠지요. 그것만으로도 하루가 조금 가벼워지는걸요.
몇 달째 못 정하고 있다고 해서 의지가 약한 건 아니에요. 저는 그렇게 보지 않네요.
그동안 버텨온 시간이 있으니 그 무게를 아는 것이겠지요. 오늘도 못 정한 채로 하루가 갔다면, 그 상태 그대로 여기 앉아 계셔도 됩니다. 정하지 않은 얘기도 얘기인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