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을 못 하는 건 예의가 발라서가 아니라, 거절당한 뒤의 자리가 무서워서인 것 같더라고요. 저도 그쪽이네요.
친구는 이삿날 혼자 새벽까지 짐을 옮겼어요.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연락을 안 했다고 하더라고요.
부탁을 하면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됩니다. 문제는 그 답을 우리가 고를 수 없다는 거죠.
거절이 돌아오면 일이 안 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아요. 이 사람에게 나는 이 정도였구나, 하는 문장이 같이 따라오는걸요. 그래서 아예 묻지 않는 쪽을 고르게 되는 거겠지요. 묻지 않으면 적어도 그 문장은 안 생기니까요.
인간은 고통을 피하려다 종종 삶을 좁게 만든다.
혼자 하면 편하다고 말하지만 실은 덜 무서운 쪽을 고른 것에 가까워요. 편했다면 이삿날 새벽에 그렇게 지치지 않았겠지요.
저는 이걸 오래 씩씩함이라고 착각했네요. 남한테 폐 안 끼치는 사람이라는 말이 칭찬처럼 들렸으니까요. 그런데 폐를 안 끼치는 만큼 사람도 안 남더라고요.
거절이 무서운 사람은 대개 남의 부탁은 잘 들어줍니다. 저도 그런 편이네요. 받는 건 어렵고 주는 건 쉬운 쪽으로 관계가 기울어 있는걸요. 그런 관계는 편해 보여도 한쪽만 계속 얇아지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아주 사소한 것부터 부탁해봅니다. 무거운 걸 잠깐 들어달라거나, 우산을 같이 쓰자거나 하는 것들로요.
작은 부탁은 거절당해도 덜 아파요. 대신 들어주는 사람의 표정은 볼 수 있는걸요. 대개는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게 도와주더라고요. 저만 그걸 큰 일로 키워두고 있었네요.
기대지 않는 관계는 깨끗해 보이지만 대체로 오래가지 않아요. 서로 조금씩 신세를 져야 다음이 생기더라고요.
오늘도 혼자 안고 계신 일이 있으시다면, 그게 유난스러운 게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저는 여전히 부탁이 서툰 사람이지만, 서툰 사람끼리 그 얘기를 나누는 건 할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