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는 말이 안 나오는 건 잘못을 몰라서가 아니더라고요. 대개는 알고 있어서 더 안 나오는걸요.
저녁 내내 통화 버튼 위에 손가락만 올려뒀다가 화면을 껐어요. 그러기를 몇 번이나 했네요.
싸움에는 대개 양쪽 몫이 있어요. 그런데 사과를 먼저 하면 내 몫만 먼저 꺼내놓는 셈이 되죠.
상대가 자기 몫을 안 꺼내면 나만 잘못한 사람이 되어버리는걸요. 그게 억울해서 입을 다물게 되는 거겠지요. 미안한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계산이 안 맞아서 못 하는 셈이군요.
자존심은 우리를 지켜주는 동시에, 가장 가까운 사람과 우리를 갈라놓는다.
이상하게 사과는 미룰수록 값이 올라가더라고요. 그날 바로 했으면 한마디로 끝났을 일이 사흘이 지나면 설명까지 붙여야 하네요.
그러다 보면 이제 와서 꺼내면 더 어색하다는 이유가 생깁니다. 그렇게 영영 안 하게 되는 관계도 몇 있었어요. 저는 그런 자리를 꽤 여러 개 남겨두고 사는 사람인걸요.
사과를 미루는 동안 우리는 대개 그 일을 다시 재판합니다. 그쪽도 잘못했다는 증거를 자꾸 모으게 되죠. 그렇게 모을수록 마음은 더 굳어지더라고요. 미안함이 옅어져서가 아니라 방어가 두꺼워지는 셈이군요.
저는 오래 준비하는 편이었어요. 오해도 풀고 제 사정도 설명하고 사과도 하는 문장을 만들려고요.
그런데 그런 문장은 대개 완성되지 않더라고요. 준비하는 동안 시간만 지나갑니다. 짧게 미안하다고만 하는 편이 차라리 도착하는걸요. 나머지는 나중에 얘기해도 늦지 않겠지요.
먼저 숙이는 사람이 지는 게 아니에요. 다만 먼저 숙일 수 있는 사람이 좀 덜 외롭게는 살더라고요.
오늘도 그 말을 못 꺼낸 채 하루가 끝나셨다면, 스스로를 나쁜 사람으로 두지는 않으셨으면 해요. 저도 미뤄둔 전화가 몇 개 있는 사람이니까요. 못 보낸 말들을 같이 세어보는 정도는 할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