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서 본 이야기를 사흘째 같은 문장으로 반복하던 이웃 아주머니가 계셨습니다. 문장이 매번 똑같았습니다. 한 글자도 안 바뀌었습니다.
저는 그 반복을 봤습니다. 문장이 안 바뀐다는 건 그 마음이 아무 데도 안 갔다는 뜻입니다.
그건 염려가 아닙니다. 걱정입니다.
먼저 정확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두 말은 사전에서 거의 같이 쓰입니다. 제가 없는 구분을 만들어낸다고 보시면 곤란합니다.
다만 실제로 쓰이는 자리를 보면 방향이 갈립니다. 저는 그 자리를 기준으로 나눕니다.
염려는 바깥으로 나갑니다. 대상이 있고, 대개 할 일이 하나 붙습니다. 전화를 걸거나, 챙겨 보내거나, 물어보거나. 하고 나면 줄어듭니다.
걱정은 안으로 돌아옵니다. 대상은 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할 게 없으니 마음이 나갔다가 그대로 돌아오고, 돌아온 자리에서 같은 문장을 다시 재생합니다.
염려는 행동으로 닫힙니다. 전화 한 번이면 끝나는 것도 많지요.
걱정은 닫히는 자리가 없습니다. 나갈 데가 없는 마음은 반드시 반복으로 갑니다. 같은 문장을 사흘 동안 똑같이 말하게 되는 건 그래서입니다. 말할 때마다 조금씩 줄어드는 게 아니라, 재생될 때마다 자리를 더 깊게 팝니다.
여기서 중요한 게 있습니다. 반복은 애정의 증거가 아닙니다. 더 많이 걱정한다고 더 많이 사랑하는 게 아닙니다. 반복은 그저 출구가 없다는 표시입니다.
지금 마음이 쓰이는 그 일에 대해 오늘 할 수 있는 행동이 하나 있습니까?
없다고 나왔을 때 자책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세상에는 내가 손댈 수 없는 일이 훨씬 많으니까요. 뉴스에서 들어오는 것들은 대개 그쪽입니다.
없애라는 말씀은 안 드립니다. 자리를 정해주시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하루에 한 번, 시간을 정해서 그 문장을 종이에 적으십시오. 적을 때 반드시 오늘 할 수 있는 것 / 할 수 없는 것 두 칸으로 나누어 적습니다. 사흘만 해보시면 대개 한 칸이 텅 비어 있는 걸 보게 되실 겁니다.
그걸 눈으로 보는 게 핵심입니다. 머릿속에서는 걱정과 염려가 같은 무게로 도는데, 종이 위에서는 둘의 크기가 다르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재생이 줄어드는 건 대개 그다음이겠지요.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오늘 마음이 쓰이는 일이 있으셨다면 하나만 확인해보시죠. 그 마음이 나갔습니까, 돌아왔습니까.
정확히 부르는 것만으로 작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