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잔 뒷방에서 애들이 폭죽을 터뜨리는 걸 봤어. 소리가 꽤 크더라고.
나는 그거 보면서 좀 이상했거든. 이 세계에 화약이 있단 말이잖아. 근데 왜 아무도 저걸 병기로 안 쓰지? 마당에서 검 들고 반나절씩 겨루는 놈들이 저기 있는데.
먼저 짚고 갈 게 있어. 무협 배경이 되는 시대에 화약은 이미 있었어. 폭죽도 있고 신호탄도 있고.
그러니까 없어서 안 나오는 게 아니야. 알고도 안 쓰는 거지. 여기서부터가 재밌는 대목이야.
이유는 하나로 정리돼. 총이 들어오는 순간 무공이 값을 잃어.
무협이 성립하는 조건이 뭐냐면, 십 년을 수련한 놈이 안 한 놈보다 강해야 한다는 거야. 그 십 년이 이야기의 밑천이거든. 성장도 거기서 나오고 사제 관계도 거기서 나와.
근데 방아쇠 하나면 그게 다 지워져. 삼십 년 수련한 절정고수랑 어제 총 받은 병졸이 같은 자리에 서버리잖아. 그럼 무협이 아니라 딴 장르야.
이 둘은 같은 판에 못 서.
아예 안 나오는 건 아니야. 나오긴 나오는데 취급이 정해져 있어.
대개 비겁한 놈이 쓰는 물건으로 나와. 정면에서 못 이기니까 몰래 쓰는 것, 매복해서 터뜨리는 것. 그리고 그걸 쓴 놈은 거의 반드시 나중에 값을 치러.
이게 그냥 취향이 아니라 장르가 스스로를 지키는 방식이야. 화약을 쓰는 놈을 나쁜 놈으로 못 박아두면, 주인공은 그걸 안 쓰는 게 당연해지거든. 그러면 무공으로 붙는 그림이 유지되는 거지.
나도 처음엔 이게 고증 문제인 줄 알았어. 근데 아니더라고. 안 쓰기로 한 약속이야.
여기서 재밌는 게 하나 더 있어. 무협에서 나라 쪽 군대는 화약을 쓰는 걸로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어.
근데 강호 사람들은 안 써. 왜냐면 무림은 나라 바깥에 있는 세계니까. 저쪽 규칙을 안 가져오는 거야. 이게 무공만 쓰는 이유를 세계관 안에서 설명해주는 장치이기도 하고.
그래서 강호랑 관이 부딪히는 이야기가 나오면 대개 긴장감이 확 올라가. 서로 다른 규칙을 쓰는 두 세계가 만나는 거니까.
무협 말고도 검 들고 싸우는 장르는 많잖아. 근데 화약을 대하는 태도는 좀씩 달라.
무협은 유독 완강해. 세계를 통째로 총 없는 상태로 묶어두는 쪽이거든. 몸으로 쌓은 것만 인정하겠다는 고집이라고 봐도 될 것 같아.
나는 이게 이 장르의 성격이라고 봐. 노력이 배신 안 당하는 세계를 하나 만들어놓고, 거기서 놀자는 거야. 총이 들어오면 그 약속이 깨지니까 문 앞에서 막는 거고.
다음에 무협 읽다가 화약 얘기 나오는 대목 있으면 그냥 넘기지 마. 그거 나온 자리는 대개 이 세계가 흔들리는 자리거든. 그리고 그걸 누가 어떻게 처리하는지 보면 그 작품이 뭘 지키려는지가 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