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매대를 세 바퀴 도시던 분이 있었어요. 몇 권을 들었다 놓기를 반복하시다가 결국 빈손으로 나가셨습니다. 나가시면서 저에게 그러시더군요. 읽고는 싶은데 뭘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고요.
이 말은 서재에서 제일 자주 듣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건 책이 부족해서 생기는 곤란이 아니더군요.
책은 넘칩니다. 목록도 넘치죠. 필독서 백 권, 화제작 목록, 누가 읽었다는 책까지. 그런데 그 목록들은 전부 남의 기준으로 정렬돼 있어요.
남의 기준으로 고른 책은 읽는 중에 힘이 안 붙더군요. 왜 읽는지가 내 안에 없으니까요. 그래서 절반쯤에서 덮게 되고, 그러면 또 자기 의지를 탓하게 되죠.
저는 이렇게 권합니다. 요즘 머릿속에 자꾸 돌아오는 질문 하나를 적어보세요. 사람은 왜 자기가 싫어하는 걸 반복하는가, 돈을 벌면 왜 안 편해지는가, 이런 식으로 거칠어도 됩니다.
질문이 하나 생기면 서가가 갑자기 정렬돼요. 그 질문에 답하려 애쓴 책들만 눈에 들어오거든요. 목록이 나를 고르는 게 아니라, 내가 목록을 자르는 순서로 바뀌는 거죠.
답을 찾아 헤매는 자는 길을 잃고, 물음을 품은 자는 길을 만든다.
기준이 섰으면 고르는 건 빨라집니다. 저는 후보 세 권을 놓고 각각 앞 스무 쪽만 읽어봐요. 그중에 계속 읽고 싶은 게 하나는 있더군요. 없으면 그날은 세 권 다 놓습니다.
이 시험은 십오 분이면 끝나요. 한 달을 고민하는 것보다 훨씬 정확했습니다.
뭘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면, 더 좋은 추천 목록을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됩니다. 지금 내 안에 남아 있는 질문 하나를 적고, 그 질문으로 서가를 잘라보세요.
읽을 책은 주어지는 게 아니더군요. 내 질문이 정해지는 순간 목록은 내가 만드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