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봉지를 들고 들어오신 분이 있었어요. 커피만 시키시고 그 봉지는 끝까지 안 뜯으시더라고요.
나가실 때 여쭤봤어요. 사놓고 왜 안 드시냐고요. 사고 나니까 그게 먹고 싶었던 게 아니더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이 오래 남았어요. 저도 밤에 가게 정리하고 나면 똑같거든요.
배는 분명히 고파요. 그런데 뭘 먹고 싶은지는 안 떠올라요. 냉장고를 열었다 닫았다 하다가 결국 아무거나 집게 되죠. 그리고 먹고 나면 이상하게 더 허전해요.
배고픔은 몸이 보내는 신호고, 뭘 먹고 싶은지는 그 위에 얹히는 거예요. 하루를 다 쓰고 나면 그 얹히는 쪽이 먼저 꺼지는 것 같더라고요.
가게 메뉴판을 만들 때 저도 비슷한 걸 겪었어요.
처음엔 메뉴를 많이 넣었거든요. 손님이 고를 게 많으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실제로는 메뉴가 많을수록 카운터 앞에서 더 오래 서 계시더라고요. 그리고 결국 아메리카노를 시키셨습니다.
지금은 좀 줄였어요. 고를 게 적으면 결정이 빨라지고, 결정이 빨라지면 그 사람이 덜 지치거든요.
이걸 자기 탓으로 돌리시는 분들이 있어요. 나는 좋아하는 것도 없다고요.
저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하루에 정해야 하는 게 이미 너무 많았던 거죠. 아침부터 크고 작은 걸 계속 골라왔는데 저녁에 하나 더 고르라니까 안 나오는 거예요.
밤에 오시는 분들 보면 그게 보여요. 메뉴판을 오래 보시는 분일수록 그날 일이 많으셨던 분이더라고요. 커피를 못 고르시는 게 아니라 그냥 더 못 고르시는 거예요.
제 방법이 정답은 아닌데 그냥 적어볼게요.
한 번에 정하려니까 안 되는 거였어요. 두 갈래씩 나누면 마지막엔 고를 게 얼마 안 남거든요. 저는 이걸 메뉴판 정리하다가 알게 됐어요.
편의점 봉지를 안 뜯으신 그분한테 결국 뭘 드셨냐고 다음에 여쭤봤어요. 라면 끓여 드셨대요.
그러면서 웃으시더라고요. 사놓은 건 다음 날 아침에 먹었다고요. 저는 그 얘기가 좋았어요. 그날 못 고른 게 없어진 게 아니라 하루 뒤로 밀렸을 뿐이잖아요.
밤에 아무거나 드시고 좀 허전하셨어도 그게 실패한 하루는 아니에요. 하루 종일 정하느라 다 써버린 거니까요. 그럴 때 커피 한 잔 정도는 제가 골라드릴게요. 그 정도는 안 정하셔도 되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