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리퍼를 일 년 동안 물로만 헹궈 쓰셨다는 손님이 사진을 보여주셨어요. 홈마다 누렇게 앉아 있더라고요.
원두를 바꿔도 맛이 안 잡힌다고 하셨는데, 원두 문제가 아니었어요. 오늘은 씻는 얘기를 해드릴게요.
원두에는 기름이 있어요. 이게 도구에 얇게 남습니다.
기름은 시간이 지나면 상해요. 상한 기름 냄새가 다음 잔에 그대로 옮겨 가고요. 그래서 안 씻은 도구로 내리면 원두가 아무리 좋아도 뒷맛이 텁텁해집니다.
물로 헹구는 건 가루를 치우는 거지 기름을 빼는 게 아니에요. 이 둘을 나눠서 생각하셔야 해요.
이 중에 두 개만 지키셔도 절반은 해결돼요. 서버와 잔이에요. 사람들이 제일 안 씻는 데가 여기고, 잔에 제일 크게 티가 나는 데도 여기거든요.
써도 돼요. 커피 도구에 세제를 쓰면 안 된다는 말이 도는데, 그건 재질에 따라 다른 얘기예요.
유리와 도자기, 스테인리스는 세제로 씻으셔도 됩니다. 헹구기만 잘하시면 돼요. 오히려 안 씻어서 생기는 문제가 훨씬 큽니다.
세제를 피해야 하는 건 알루미늄 모카포트, 그리고 나무 손잡이나 나무 뚜껑이에요. 이건 냄새를 먹어요.
씻고 나서 잔에 코를 대보시면 알아요. 아무 냄새가 안 나야 정상이에요.
세제 냄새가 남아 있으면 덜 헹구신 거고, 묵은 커피 냄새가 나면 덜 닦으신 거예요. 저는 마감할 때 잔을 몇 개 골라서 이걸 해봐요. 코가 저울보다 정확할 때가 있어요.
씻어놓고 겹쳐 쌓아두면 안쪽이 안 말라요. 거기서 냄새가 시작됩니다.
엎어서 물기가 빠지게 두시고, 완전히 마른 다음에 정리하세요. 특히 뚜껑 있는 텀블러나 모카포트는 조립해서 넣어두면 안 돼요. 분리해서 말리셔야 합니다.
커피 도구는 쓰는 시간보다 놓여 있는 시간이 훨씬 길어요. 그 시간을 어떻게 두느냐가 맛을 정합니다.
드리퍼를 세제로 한 번 닦고, 서버는 아예 새로 사셨어요. 서버 안쪽이 이미 손을 못 댈 만큼 됐더라고요.
다음에 오셔서 그러시더라고요. 원두를 그대로 쓰는데 맛이 달라졌다고요. 저는 그럴 줄 알았어요. 그동안 원두가 억울했던 거예요.
집에서 내린 커피가 어딘가 아쉬우시면, 새 원두를 사기 전에 도구를 한 번 뒤집어보세요. 돈이 안 드는 쪽부터 보는 게 순서예요.